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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파워(왕하 5:1-6)

이 세상에 아픔이 없는 사람은 없다. 아람 나라의 최고 권력자였던 나아만 장군이 신의 저주를 받은 병이라고 하는 나병을 앓고 있었던 것처럼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문제들을 가지고 살아간다. 나아만 장군이 겪었던 질병은 한센씨병이 아니라 아토피와 같은 증세였을 가능성도 있다. 성경에서 나병이란 단어는 광범위한 모든 피부질병을 나타내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그런 점에서 나아만 장군을 닮았다.

그런 나아만 장군에게 어린 소녀가 전해준 소식은 기쁜 소식이었다. 사마리아에 있는 하나님의 선지자를 만나면 질병을 고칠 수 있다는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만일 이 소녀가 나아만 장군에게 전쟁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주겠다고 했다면 나아만 장군이 무시하였을 것이다. 누가 누구에게 훈수를 둘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나아만 장군은 이 소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쁜 소식을 전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영적인 나병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야 할 소식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영적인 질병을 치유하고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기쁨의 소식이다. 우리는 바리새인들처럼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영적인 훈수를 두려고 한다면, 무시당하고 말 것이다. 퀴어축제를 벌이고 있는 동성애자들 앞에서 기독교계가 나서서 동성애가 죄라고 지적하고 회개하라고 외쳤다. 하지만 그 어느 동성애자도 회개하지 않았고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동성애 반대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비난했다. “너나 잘하세요”라고 말이다. 신도들을 성추행하는 목사, 탐욕으로 가득 찬 교회, 서로 싸우는 교회, 세습하는 교회, 정권에 아부하는 교회 등등 온갖 추악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교회라고 비난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바리새인들처럼 다른 사람들의 죄를 지적하기보다,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영적인 나병에서 치유함을 받을 수 있다고 말이다.

영적인 나병을 고칠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이야기해주지 않아서 그 질병으로 인해 죽는다면 그 책임이 얼마나 클 것인가? 3년 전 세월호가 바다에 전복되었을 때, 자신들을 배에서 빠져 나가 목숨을 건졌으면서도 승객들에게는 빠져나오라는 말을 하지 않고 그냥 그곳에 기다리라고만 말했던 선원들처럼 우리도 지금 침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께서 오늘 만나게 해주는 사람들은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야 할 영적인 강도만난 자들이다. 외면하고 지나칠 것이 아니라,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한다. 그 옛날 자신을 포로로 잡아와서 노예로 부리고 있는 주인을 향해서 기쁜 소식을 전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 소녀는 고통스러워하는 주인님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다.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을 보고 그냥 저 멀리 계시기만 하지 않았다. 그분은 이 세상에 내려오셨고, 우리가 당해야 할 모욕과 천대와 멸시를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셨다.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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