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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복음전파

성육신의 원리(고전 9:19-27) – 복음전파 06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전도왕의 간증들을 들으며 그 방법을 배워보지만 그런 방법들을 사용한다고해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농사를 짓는 것과는 달리 사람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 통했던 방법이 다른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을 수 있다.

성경에서는 성육신의 원리를 우리들에게 가르친다.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그 사람들과 함께하는 결단을 내렸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다가가고,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처럼 다가갔다. 우리는 진리를 수호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방법만을 고집할 때가 많다. 하지만 참된 사랑은 자신의 방법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긍휼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저 높은 곳에만 계시지 않았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낮고 천한 곳까지 내려오셨다.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마 13:3-9) – 복음전파 05

농부가 씨를 뿌리면 모든 씨가 다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다. 그 가운데 일부는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런데 그것만 바로보면 씨를 뿌리를 수 없다. 농부가 씨를 뿌리는 것은 열매를 맺는 씨들 때문이다. 한 알이 심기면 100배, 60배, 30배로 맺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늘 실패하는 것 같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방법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기를 기뻐하셨고(고전 1:21), 복음을 듣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구원받을 자들을 예정해 놓으셨다(행 13:48).

복음을 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양이 이리 가운데 들어가는 것처럼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아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러 가는 길에 주님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마 28:19-20) 우리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릴 때 기쁨으로 단을 가지고 돌아오게 될 것이다(시 126:5-6).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롬 10:9-15) – 복음전파 04

복음은 기쁜 소식이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이 너무나도 쉬운 길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된다. 그것은 돈이 없어도 가능하고, 학력수준이 높지 않아도 가능하고, 어린아이라도 가능한 길이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에게나 가능한 길이기 때문에 기쁘고 복된 소식이다. 이 길은 이 세상의 모든 다른 종교들의 길과는 다른 길이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세속이라는 종교를 포함하여), 최고의 수준에 오른 자만이 겨우 해탈이나 득도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을 뿐이다. 그 외의 사람들은 어림없는 길이다. 세속이란 종교에서는 최고의 부와 명예와 권력을 누린 자에게만 행복을 약속하는데, 실제로 그걸 누리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왜 이 기쁜 소식을 사람들은 환영하지 않고 오히려 기분 나빠할까? 그것은 우리들이 이 기쁜 소식을 기분 나쁜 소식으로 들리게끔 잘못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선포할 때, 이 말은 기쁜 소식처럼 들리지 않는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종교보다도 더 이려운 길처럼 들린다. 최고의 수준에 올라도 영생이 불가능하고 거기에 더하여 예수님도 믿어야 한다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최고의 수준에 올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신 것이다. 그래서 기쁜 소식이다. 이 기쁜 소식을 알려야 한다. 모두가 간절히 원하는 소식이기 때문이다. 불치의 병에 걸렸는데,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놀라운 치료제를 공짜로 나누어준다는 것과 같은 소식이기 때문이다.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고전 3:6-8) – 복음전파 03

우리는 늘 조급하다.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경우가 많다. 복음을 전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당장 그 결과가 있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그러하듯 당장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열매가 맺히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심는 사람이 필요한가 하면, 물을 주는 사람도 필요하다. 각각의 과정에서 필요한 사람들이 있는 것인데, 결국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전 3:6).

사람들은 맨 마지막에 성공한 사람만을 기억한다. 마치 축구에서 골을 넣은 사람에게 환호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골을 넣기까지 다른 선수들이 필요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복음 전도의 열매가 맺히기까지 수많은 노력들이 더해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 세상 사람들은 그 수고가 헛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엄청난 돈을 투자하여 광고를 한다. 결국 그 광고가 하나의 밑거름이 되어 소비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들은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낙심해버린다. 그렇지 않다.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포기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매 거둘 것이기 때문이다(갈 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