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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왕하 5:7-14)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은 아마도 자존심일 것이다.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어렵다. 그 옛날 엘리사에게 치료를 받으러 갔던 나아만 장군도 그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나병을 치료받지 못하고 그냥 돌아올 뻔 했다.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병을 치유받기 위해서 왔고, 엘리사는 그 병에서 나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는데 왜 나아만 장군은 분노하고 있는가? 첫 번째 이유는 엘리사가 나아만 장군에게 합당한 예를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게 불편해서 분노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자존심이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다. 그 자존심 때문에 순종할 수 없었다. 주님의 은총의 자리로 나가기 위해서는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삭개오처럼 말이다.

나아만이 분노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엘리사가 제시한 방법이 너무나도 쉬워보였기 때문이다. 만일 엘리사가 일천번제를 드리라고 했거나 공양미 300석을 바치라고 했다면 그대로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요단강물에 일곱 번 몸을 담그면 나을 것이라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그런데 바로 이게 구원이다. 이 세상의 거짓 종교들은 우리 편의 엄청난 노력을 요구한다. 도를 닦아야 하는 것이고, 완벽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고, 고행을 해야 하는 것이고, 완전히 마음을 비워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거짓 가르침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그리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을 조롱한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 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구원의 손길을 우리들에게 내민 것이다. 그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나아만은 분노 가운데 돌아가려 했지만, 그의 부하들이 말렸다. 이게 그에겐 축복이었다. 우리가 넘어질 때 서로 믿음의 길을 권고해야 한다. 남편이 넘어지면 아내가 달래주고, 아내가 넘어지면 남편이 권고하여 믿음의 길을 걸어야 한다. 만일 악을 행하는 일에 남편과 아내가 마음이 맞으면 함께 망하는 것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말이다.

그런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먼저 자존심을 내려놓으셨다. 모욕과 멸시와 천대를 받으실 때에도 침묵하시고, 완전히 발가벗겨져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하셨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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