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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종류의 왕(삼상 8:1-22)

사무엘의 시대에는 블레셋 민족이 이스라엘을 쳐들어올 수 없었다(삼상 7:13). 이러한 사실은 엘리 제사장의 시절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그 시대에는 블레셋 민족으로 인하여 법궤까지 빼앗겼으니까 말이다. 지도자 한 사람이 바뀌는 것이 한 민족의 운명을 바꾼 것이다.

그러한 호시절이 지속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런 사무엘이 늙게 되었다(삼상 8:1). 더 이상 사사로서 사명을 수행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정답이 될 수 없는 이유이고, 그 어떤 사람도 우리들에게 영원한 문제의 해결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사무엘의 아들들은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했다(삼상 8:3). 슬픈 일이다. 좋은 아버지 밑에서 자라난 자녀들이 자동으로 좋은 사람이 될 수만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법은 없다. 가장 지혜로웠던 솔로몬 왕의 아들은 가장 어리석었던 르호보암이 아니던가?

결국 이스라엘 민족은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했다. 이러한 요구는 정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참으로 어리석은 요구였다. 이들은 지금 무엇이 문제인지는 잘 알았지만, 그 해결책은 정말 엉뚱한 해결책을 들고 나온 것이다. 사람들은 참 어리석다.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잘 아는데, 그 해결책은 엉뚱한데서 찾는 게 사람들이다. 왕을 세울 수 있다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해결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왕을 세우게 될 경우 어떤 결과가 나타날 것인지에 대해서 설명했다(삼상 8:11-18). 왕은 결국 백성들의 재산을 요구할 것이고, 자녀들을 요구할 것이다.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길 원하여 왕을 세우는 것인데, 사실은 왕은 백성들을 착취하는 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아합 왕은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았고, 솔로몬은 백성들에게 강제 노역을 시켰다.

어쩌면 우리들은 사무엘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닮았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왕을 갈망하는 점에서 그렇다. 우리가 찾고 있는 왕은 무엇인가? 돈이 아닌가? 명예와 권력이 아닌가?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돈이 많으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돈의 백성(노예)이 된다. 그 결과 돈이 주는 행복이 느껴지는 것 같은데, 결국 자신의 건강을 해쳐버리고, 자녀들과의 관계가 깨어져버리고, 돈을 벌기 위해서 가정이 해체되는 위기를 맞이한다. 왕을 세우면 좋을 줄 알았는데 결국 그 왕으로 인하여 착취를 당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 외에 그 어느 것도 우리에게 참된 행복과 안식을 주는 왕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나님은 참되신 왕이다. 그 왕은 우리를 착취하는 왕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를 섬기는 왕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정말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비유를 하신 적이 있다. 누가복음 12:36-37에 있는 비유이다. 혼인집에서 돌아온 주인이 종들이 깨어 있는 것을 보면, 주인이 띠를 띠고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수종든다는 비유이다. 세상에 그런 주인이 어디 있겠는가? 결코 있을 수 없는데 예수님이 그런 비유를 해주셨다. 왜? 바로 그 모습이 주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왕이시다. 그런데 그 왕은 우리를 착취하는 왕이 아니라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주시고 우리를 섬기러 오신 왕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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