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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은 어디서 오는가?(약 1:12-15)

시련을 당하는 것은 어쩌다가 재수 없는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성경은 우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이라 생각할 것이 아니라고 가르친다(벧전 4:12). 즉 누구에게나 시험(시련)은 다가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누가 복이 있는가? 그 시험을 참고 견디어내는 자가 복이 있다(약 1:12). 성경은 아무런 시련을 당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시험(시련)을 참고 견디는 자가 복이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도대체 왜 우리는 시험을 당하게 되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야고보서 1:13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험을 주시지 않는다고 기록한다. 하지만 성경 다른 곳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시험하는 경우가 많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시기도 하셨고, 이스라엘 민족이 순종하나 시험하기 위해서 가나안 민족을 다 내쫓지 않으셨다고 기록한다. 그렇다면 야고보서 1:13은 다른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즉 하나님은 우리를 파멸시키기 위해서 우리를 유혹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죄를 지어놓고도 다른 사람이나 환경 탓을 하고, 심지어 하나님 탓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죄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을 하나님께 돌릴 수 없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선악과를 만들어놓고 아담으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하셨을까? 선악과를 만들어놓지 않았더라면 죄를 짓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하지만 선악과는 우리가 죄를 짓게 하기 위해서 만드신 것이 아니다. 사실 선악과는 은혜의 방편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선악과를 먹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과의 생생한 관계를 유지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한 선악과는 축복의 도구가 될 수 있었다. 욥에게 어느 날 갑자기 재앙이 닥쳤지만, 그 재앙을 통해서 욥이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오히려 빈손으로 이 세상에 왔으나 풍성하게 삶을 살 수 있었던 것들 생각하며 만유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었다(욥 1:21). 사실 욥에게 닥친 재앙은 재앙이 아니라 신앙적 성숙을 향해 나아가는 축복과 은혜의 도구였던 것이다.

미국의 베들레헴 침례교회의 존 파이퍼 목사님은 전립선 암에 걸려 수술을 앞둔 날, “당신의 암을 허비하지 마십시오”(Don’t waste your cancer)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글의 요지는 암은 재앙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이기에 그 선물을 허비하지 말고 잘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영적인 유익을 위한 선하고 좋은 것들이지, 우리를 파멸시키기 위해서 악한 의도로 주시는 것들이 아니다. 하나님은 나쁜 하나님이 아니라, 선하시고 좋으신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너무나도 사랑이 많으신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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