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닫기

돌아온 사람(눅 17:11-19)

예전에 동남아 지역으로 그리고 중남미 지역으로 단기선교를 간 적이 있었다. 그곳의 아이들이 열악한 환경 가운데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이 참 마음 아팠다. 옷도 더럽고 몸도 더럽고 냄새가 나는 채로 집회에 모여든 아이들을 보면서, 내 마음에는 이 아이들을 좀 데리고 가서 목욕이라도 시켜주었으면 하고 생각했고 옷이라도 빨아 입혀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 사는 우리들을 바라보실 때에도 그런 비슷한 마음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해보았다. 예수님은 열 명의 나병환자들이 와서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외칠 때, 그들을 고쳐주시려고 하셨다. 저 천국의 멋진 곳을 아시는 주님께서 사람들의 비참한 상황을 보신다면 고쳐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리가 제공한 것에 따라서 겨우 조금 반응하는 조폭두목이나 장사꾼이 아니시다. 오히려 주님은 우리에게 한 없이 사랑을 베풀어주시기 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나병환자들을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제사장에게 보이러 가는 도중에 자신들의 병이 깨끗이 낫게 되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한 사람, 그것도 사마리아 사람이 예수님께 돌아와서 감사를 드렸다. 그 때 예수님은 질문을 던지셨다. 나머지 아홉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10명의 나병환자들 중에서 오직 한 명만이 주님께 돌아와 감사를 표하고 나머지 9명의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성경에는 그 이유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그들은 배은망덕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럴 가능성도 있다. 사람들 중에는 은혜를 모르고 오히려 은혜를 악으로 갚는 사람들이 꼭 있게 마련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돌아온 사람이 1명이고, 나머지 9명의 사람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점이 특이하다. 일반적으로 배은망덕한 사람은 예외적인 한 사람에 불과한 것이니까 말이다. 왜 90%의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 이유는 그들이 배은망덕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주님께 돌아와서 감사를 표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 제사장에게 가서 다 나았다는 판정도 받아야 했을 것이고, 가족으로 돌아가서 자신이 나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직장으로 돌아가는 일이 시급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언제나 실패하는 이유는 우리가 전적으로 악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선하고 착한 동기들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그렇게 착하고 선한 것들을 시행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이 언제나 많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영적인 문제는 뒤로 밀리게 되고, 이 세상의 일들에 밀려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은 만사를 제쳐두고 주님께 왔다. 그리고 감사를 표했다. 우리들의 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을 실행으로 옮겨야 한다.

우리 주님은 우리들을 향해서,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 잘 알지? 그런데 할 일이 있으니, 나중에 보자”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하늘에서 이 땅으로 오셨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 

Loading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