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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베스를 구원한 사울(삼상 11:1-11)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사울 왕은 공식적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지만, 많은 이스라엘 사람은 사울이 정말 자신들의 왕이라는 사실이 실감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 백성들 중에는 사울 왕을 배척하는 불량배들이 섞여 있었는데, 이들은 잠재적인 위험이 되었을 것이다. 이들의 부정적인 생각이 이스라엘 민족 전체로 퍼져나갈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사울 왕의 리더십을 인정하고 따르며 협력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노력은 갑절의 노력이 필요했었다.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관점이 더 쉽게 퍼져나가기 때문에, 그런 부정적인 관점을 이기기 위해서는 말이다.

하지만 사울 왕의 편에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권위를 획득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진정으로 모든 사람들이 사울을 자신들의 왕으로 인정하게 될 것이니까 말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는 주어진 권위만을 믿고 갑질을 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주어진 권위에 순종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도 필요한 것이지만, 권위가 주어진 사람들은 자신에게 권위가 주어져 있다는 것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권위를 획득하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섬김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낮아져서 사람들을 섬기셨고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심으로 참된 권위를 얻으신 예수님의 방법으로 말이다(마 20:25-28).

사울 왕에게는 자신의 권위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암몬 민족이 야베스를 공격하여서 그들을 노예로 삼겠다고 위협해 왔을 때였다. 사울 왕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사울은 분노했다. 암몬 족속이 야베스를 공격하는 것에 대한 분노였다. 이러한 분노가 우리가 해야 할 분노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우리들의 사소한 유익이 침해될 때에는 분노하면서, 정말 대의를 위해서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울은 그 순간에 의로운 분노를 내었다. 그리고 야베스를 구원해 내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사울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사실을 만 천하에 알리게 되었다.

사울은 야베스가 위험에 처했을 때, 몸을 사리지 않았다. 강대한 민족 암몬 민족과 싸우다가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오른쪽 눈이 뽑혀버린 채 노예가 될 수도 있는 그런 위험한 상황에서 도망치지 않았다. 목숨을 걸고 야베스를 구원하였다. 예수님이 하신 일도 바로 이와 같다. 예수님은 우리가 사탄의 공격을 받아 죄의 노예로 살수 밖에 없었을 때에, 우리를 모른 척 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직접 하늘에서 이 땅으로 오셔서 사탄을 물리치셨다. 십자가 위에서 모든 피를 흘리면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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