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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없을지라도(합 3:17-19)

사람의 마음이란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무서워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아야지라고 마음을 먹으면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기뻐해야지 하고 마음을 먹으면 기쁜 마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사랑과 미움의 감정도 그렇고, 우리가 느끼는 대부분의 감정들은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어떤 주어진 조건에 따라 자동적으로 나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항상 기뻐하라 명령하시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하신다. 우리가 우리 마음을 조절하는 것이 불가능한데, 왜 하나님은 이런 명령을 우리들에게 하시는 것일까?

우리는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을까? 마음을 우리 뜻대로 조절할 수 없는 것이어서, 기뻐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자동적으로 기쁜 마음이 솟아오르는 반면, 반대로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면 도무지 기쁨이 솟아나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어떻게 우리는 항상 기뻐할 수 있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을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쁨이란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충족될 때에 느끼게 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면, 우리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바꿈으로써 항상 기뻐할 수 있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재물이나 명예나 권력이나 쾌락이나 성취감 같은 것이라면 우리는 그런 것들이 충족될 때 기뻐하고 충족되지 않을 때 우울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하라고 말씀하셨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면, 우리는 항상 기뻐할 수 있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 물질이나 명예과 권력이나 쾌락이나 성취감은 있다가도 사라져버리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항상 기뻐할 수 있고 모든 일에 감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박국 선지자가 만난 상황은 고통스런 상황이었다. 의인이 고통을 당하고 악인이 판을 치는 세상이었다. 불법과 편법이 승리하고 정직한 자들은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세상이었다. 게다가 포악한 민족인 바벨론이 유다를 공격하여 완전히 멸망당할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하박국은 하나님께 불만을 토로하였다. 그런 하박국을 향해서 하나님은 응답을 해주셨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고(합 2:3), 의인은 결국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 것이고(합 2:4),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에 가득할 것이라(합 2:14)는 응답이었다. 그러므로 결론은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잠잠하라는 것이었다(합 2:20).

하박국은 하나님을 만나면서 결국은 그의 마음이 바뀌었다. 아무리 눈에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것이 헛수고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워하며 기뻐할 것이라는 것이 그의 고백이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우리를 외면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영원한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십자가에까지 오셔서 피를 흘려주신 분이시다. 그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 때,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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