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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기를 힘쓰는 교회(행 2:42-47)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이란 책에서 나누어 지배하라(divide et impera)고 말했다. 이러한 전략은 아주 효과적인데, 사실 사탄도 우리를 향해서 이러한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성도들이 함께 하지 못하고 외톨이가 되면 사탄의 밥이 되기 쉽다. 마치 사자가 초식동물을 공격할 때, 무리지어 있는 동물들을 공격하기는 어렵지만 홀로 떨어져 있는 동물을 쉽게 잡는 것처럼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들이 저 천국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 세상에 살면서 영적인 성숙의 과제를 안고 살아가는데, 우리는 교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보호받고 영적인 훈련을 할 수 있다. 이것이 성경적인 관점이다. 교회에 다니기는 하지만 성도의 교제를 등한시하는 것이 요즘의 추세인데, 이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공동체를 이루어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해야 한다(히 10:24-25). 그 유익이 너무나도 크다. 혼자 길을 가면 얼어 죽지만, 한 사람을 업고 갈 때는 살아서 갈 수 있었다던 인도의 성자 선다 싱의 경험처럼 말이다.

초창기 교회는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였다. 그들은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고, 교제하고, 기도했다(행 2:42, 46-47). 왜 그들은 이렇게 모이기를 힘썼을까? 그들은 놀라운 영적인 체험을 했기 때문이었다. 누가 강요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모였고 교제했고 기도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들은 믿음을 지켜 나갈 수 있었다. 그 시대는 교회에 대해 적대적인 분위기가 있는 시대였다. 따라서 아무리 그들이 영적인 체험을 했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혼자 있었다고 한다면 머지않아 믿음이 식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였고, 서로 격려했고, 그래서 신앙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초창기 교회의 모습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들은 교회에 나오지 못하고 공동체에 나올 수 없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사람들은 힘들고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교회에서 멀어진다. 주님께 정말 나와야 하는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인데도 말이다. 왜 나오지 못할까?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가지고 나오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때 일수록 주님께 나와야 한다. 교회에 나와야 한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주님께서는 상처받고 상한 사람들도 주님께 나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저 높은 곳에서 낮고 천한 이 땅으로, 죄인의 모습으로 하고 이 세상에 오셨다. 십자가에 죽으시기 까지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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