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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려온 도끼(왕하 6:1-7)

엘리야와 엘리사 두 사람 가운데 누가 더 뛰어난 선지자일까? 엘리사 선지자는 엘리야에게 갑절의 영감을 달라고 했던 것을 증명하듯, 성경에 보면 엘리야의 기적보다 엘리사의 기적이 더 많이 나온다. 그것뿐만 아니다. 엘리야 시대는 영적인 침체기였다. 모든 사람들이 배도의 길로 나갔고, 엘리야만이 고군분투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엘리사의 시대는 영적인 부흥이 있던 시대였다. 엘리사 시대에는 선지생도들이 몰려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부흥이 있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엘리사가 더 뛰어난 선지자였을까? 하지만 신약성경에서 엘리사에 대한 언급은 한번 뿐인 반면 엘리야에 대한 언급은 29번이나 나온다. 엘리야가 더 훌륭하다는 말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결과만으로 사람을 평가할 것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사람들의 평가나 판단, 또는 눈에 보이는 결과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언제나 나의 성실함을 그대로 반영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신실할 것을 추구하야 하고, 그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선지생도들이 몰려들자, 엘리사는 이들을 수용할 건물을 짓기로 결정했다. 발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인 부흥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예산이 부족하다고 핑계할 것도 아니고, 건축하는데 인원이 부족하다고 핑계할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종종 공공기관처럼 행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예산과 계획대로만 움직이려는 생각이 많다. 하지만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 엘리사 시대에는 하나님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도끼가 빠진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로 말하자면 이웃에게서 경운기를 빌려왔는데 망가뜨린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아예 도끼를 빌리지 않았어야 했는가? 아니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는 잘못된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교통사고가 무서우니까 운전면허를 받아서도 안 되고, 부부갈등이 무서우니까 아예 결혼을 안 해야 한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것일 뿐이다.

엘리사는 나뭇가지를 물에 던져 도끼를 건져내었다. 이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전래동화 금도끼 은도끼 쇠도끼에 비하면 밋밋한 스토리이다. 우리나라 전래동화는 권선징악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엘리사는 그냥 울고 있는 제자를 위해 도끼를 찾아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우리가 행한대로 갚으시는 분이시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를 사랑하신 분이다. 만일 우리가 행한대로 하나님께서 갚으신다고 하면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금도끼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래서 우리를 위하여 사랑을 베푸셨다.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해 주셨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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