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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믿음(히 11:21) -믿음의 사람들 10

야곱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산 인생도 없을 것이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어머니 배속에서부터 형과 싸웠다. 그의 인생은 성공을 위해서 속임수와 모략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에게 있어서 믿음의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놀랍게도 히브리서 11:21은 그가 말년에 요셉의 두 아들들에게 축복하고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경배한 것을 가리켜 믿음으로 한 일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도대체 어떤 의미에서 그렇게 본 것일까?

요셉은 야곱이 병들었을 때에 두 아들을 데리고 아버지에게로 갔다. 아버지가 그들에게 축복해줄 것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때 야곱은 두 팔을 어긋나게 하여 둘째 아들인 에브라임의 머리에 오른 손을 얹고 축복해주었다. 그때 요셉은 마음에 들지 아니하여 아버지를 말렸다. 하지만 야곱은 그렇게 한 것이 실수가 아니라고 말했다. 일부러 둘째 아들에게 축복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게 믿음으로 한 일이라고 기록하는 것일까?

원래 야곱은 성공을 위해서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고, 라반을 속인 삶을 산 사람이었다. 그렇게 해서 인생을 살았다고 한다면, 그는 벌을 받아야 마땅했을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런 야곱을 사랑해 주셨다. 왜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셨는가? 그것은 야곱이 다른 사람들보다도 거룩한 사람이었고 착한 사람이어서가 아니었다.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사랑하신 것이다. 마치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데에는 다른 어떤 이유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롬 9:10-13).

야곱이 그러한 사실을 깨달은 것은 아마도 얍복강 나루에서였을 것이다. 오랜 타지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야곱은 마음이 편하지 않았었다. 고향으로 돌아가면 나를 환영해줄 부모님이 계셨지만, 그의 형 에서는 자신을 죽이려고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무이다. 아니나 다를까 400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온다는 소식마저 들렸다. 그때 야곱은 얍복강 나루에서 하나님과 씨름을 했다. 누군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때 하나님은 야곱의 다리를 치셨다. 그래서 절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 야곱이 깨달은 것은 하나님을 보았는데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하나님 앞에서 더러운 죄인이 죽어야 마땅한데도 죽이시지 않고 그저 솜방망이 처벌만을 받은 것을 기억하면서,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것은 자신의 꾀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하심 때문이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야곱은 다리를 절면서 그때의 은혜를 기억했다. 그리고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에 요셉의 두 아들들을 축복하면서 둘째 아들에게 오른 손을 얹었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는 받는 자에게 받을만한 마땅한 자격이 있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둘째 아들이지만 오른 손의 축복을 하는 것이다. 받을 자격이 없어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라는 의미였다. 장자에게 왼 손을 얹는 것은 장자라는 사실 때문에 교만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치신다면 언제든지 치실 수 있음을 기억하고 겸손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야곱의 믿음은 그가 우리들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자격미달의 사람에게 한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다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했다는 데 있다. 사실 그것 외에는 우리가 바랄 수 있는 것이 없다. 내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주님은 아무리 부족한 사람이라도 받아주시기 위해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은혜의 하나님이시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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