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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라(시 146:1-10)

지난 수요일 날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습니다. 결과를 알고 계십니까? 결과가 아주 어마어마한 결과가 나타났는데요. 민주당이 180석을 휩쓸어서 거대 여당이 탄생하였다고 하는 그런 소식을 우리가 접하게 됐습니다. 선거의 결과를 보고, 기분이 좋으신가요? 기분이 쓸쓸하신가요? 안 좋아요? 좋아요? 좋으신 분도 있고, 안 좋으신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농담으로, 제 농담으로 오늘 설교를 시작하려고 하는데요. 여러분, 농담이니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알고 계십니까? 제가 가는 곳마다 승리가 있다는 것을? 제가 대구에 있을 때는 삼성 라이온즈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는데, 제가 전주 오니까, kia 타이거스가 우승하더라고요. 그런데 이번 선거도 그렇게 됐습니다. 제가 대구에 있을 때는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는데, 제가 전주로 오니까, 민주당이 180석을 차지했어요. (이래 봬도 제가) 이런 사람입니다. 박수 치거나, 아멘 할 건 아니고요. 농담입니다.

그냥 농담이고, 오비이락이죠. 오비이락. 제가 대구에서 목회할 때 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는 그런 일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다음 주일날 교회에 와서, 여러분 선거 결과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고 물어봤더니요. 그 교회에 참여한 모든 성도들의 얼굴이 만면에 웃음을 지으면서, “너무 좋아요” 하면서, 박수를 얼마나 많이 쳤는지 모릅니다.

참, 정치라고 하는 것이 스포츠랑 비슷해서, 내가 지지하고 후원하는 사람이 당선이 되면, 그렇게 기분이 좋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당선이 되면, 그렇게 또 마음이 씁쓸하게 되기도 하는 거죠. 어쩌면 이 가운데는 여당을 지지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이번 선거 결과를 보고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이 가운데는 여당을 지지하지 않는 분들이 계셔서, 그래서 이번 선거 결과를 보고 기분이 많이 상하신 분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 순간에 우리가 들어야 될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일까 고민하면서, 우리가 말씀을 들었으면 좋겠는데, 이 시간에 우리가 들어야 될 말씀은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는 메시지입니다. 제가 대구에 있을 때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돼서 기뻐하고 있던 우리 성도들을 향해서 전했던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대통령 믿지 말라고 하는 메시지였습니다. 정치인들을 믿지 말고, 사람에게 우리의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십시오. 그런데 오늘 이번에 다시 민주당이 대승을 거두는 이 시점에, 역시 우리가 들어야 할 메시지가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사람을 의지하거나, 정치인을 의지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고 하는 이 말씀을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들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왜 사람에게 소망을 두지 말아야 할까요? 정치인이나 그 어떠한 사람에게 우리의 소망을 두지 말아야 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첫 번째로 사람은 도울 힘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은 도울 힘이 없다고 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오늘 읽은 시편 146편 3절 말씀에 보면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보는 사람은 누군가? 사람은 도울 힘이 없다는 겁니다. 물론 도울 힘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 어느 정도 도울 힘이 있는 것이죠. 아무것도 없는 사람보다는, 힘이 있고 권력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도움이 됩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보다는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도움이 됩니다. 무식한 사람보다는 학식이 있고 지식이 있는 사람이 우리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필요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살 때 제일 힘들었던 것 중에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병원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야 그런대로 어떻게든 살아갈 수가 있는데, 그런데 외국에 살면서, 그러면서 제일 힘든 것이 무엇이냐면 아팠을 때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아프고, 내가 아프고 했을 때, 그래서 정말 아프면, 제일 어려운 게 무엇이냐면, 병원에 가야 되는데, 병원에 가서 아픈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의사의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아야 되는데, 그건 좀 고급 영어를 해야 되잖아요? 좀 더 상황을 잘 설명해야 되니까, 너무나도 힘들고 어려워요. 그래서 아프면 정말 힘들고 어려운 그 상황인데, 그런데 우리가 살던 그 아파트에는 펜실베이니아 대학이랑 좀 가까운 가기 좋은 동네에 있었기 때문에, 그 아파트에 한국 사람들이 많이 연수를 와서 살았습니다. 누가 살았냐면 펜실베이니아 대학에 연수를 오신 의사 선생님 가정들이 몇 분 계셨어요. 그래서 아프면 그분들에게 가는 거예요. 우리 애가 이렇게 아픈데, 이거 큰 문제 아닐까요? 이거 어떡하면 좋아요 하면, 그때 한국에서 잠깐 오셔서, 그 아파트에 살고 있던 그 의사분들이 한번 보자고 하면서, “괜찮을 것 같아요. 큰 문제 아니에요.” 하는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정말 안심이 되는 말이었는지 모릅니다. 사실 그 의사들 분들 가운데 대부분이 다 치과 의사였는데요. 치과 하고는 관계없는, 배 아픈 문제를 가지고 있어도, 그분에게 찾아가서 얘기하면, 힘도 되고 도움이 되는 그런 경험들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전문 지식이 있는 분들이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법적인 문제가 생기면, 법조인이 도움이 되는 것이고, 여러 가지 힘쓸 일이 있을 때는 힘이 있는 사람의 도움이 되는 것이고, 의사가 도움이 되는 것이고, 도움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많이 도움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많은 도움을 얻게 되는 것이고,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사람들이 정치에 매달리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수요일 날 선거하는 모습을 보고서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몰라요. 코로나19 시대, 이런 상황 가운데서 투표율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올라갔을 뿐만 아니라, 마스크를 끼고 장갑을 끼고 그렇게 길게 줄을 서서, 1시간 2시간을 기다려서 투표하고 나오는 그 열정 어디서 있을까요? 아마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는, 정치인들을 의지하고 싶은 마음, 내가 지지하고 후원하는 그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고, 그 사람들이 나를 위해서 일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갈망이 그런 자리로 가게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람은 도움도 되고 여러 가지 유익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우리가 이 시간에 깨달아야 될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고 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우리들의 궁극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부모가 자녀를 사랑해도, 자녀에게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부모가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다 해줄 수가 없어요. 대신 가서 시험 쳐줄 수도 없고, 대신 가서 아파줄 수도 없고, 그 아이의 문제를 내가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벌써 세월호 6주년이 됐습니다. 6년 전에 자기 자녀가 바다에서 빠져 죽는 그 모습을 보고, 바닷가에서 발을 동동거리면서, 전혀 도움을 줄 수 없었던 그 부모,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하는 것이 우리들의 연약한 모습이었다고 하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때때로 우리들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힘이 되기도 하고, 능력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때로는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또는 어떤 분야의 전문가들이, 우리들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완벽한 도움이 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성경에서 보여주고 있는 사람의 모습인 줄로 압니다.

오늘 우리는 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해야 합니까?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고, 우리와는 달리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예레미아서 32장 27절의 말씀에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믿고 신뢰해야 될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고 믿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왜 사람을 믿거나 신뢰할 수가 없습니까? 그것은 사람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쉽게 변해버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능력이 있어도, 그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그 사람의 마음이 변해버리면 모든 것이 다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죠. 안타깝게도 오늘날 수많은 가정이 도중에 깨어져 버립니다. 결혼할 그 당시에는 당신 아니면 살 수 없다고, 당신만이 나의 소망이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영원히 함께 하자던 그 맹세와 그 약속을 하면서, 가정을 이루었는데, 어느 순간에 당신 때문에 못 살겠다고 하면서, 그 사람의 마음이 바뀌어 버리는 것이 인생의 마음인 것이죠.

어쩌면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선거 기간에 보니까 얼마나 머리를 숙이면서 인사를 하고 절을 하는지요. 그 모습을 옆에서 보니까, 정말 측은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저 사거리 보니까 거기가 아마 명당자리 같아요. 정치인들이 그래서 서로 그 자리를 먼저 차지해 가지고, 거기에 서가지고, 출근하는, 그리고 퇴근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연신 고개를 숙이면서, 허리를 숙이면서 절하는 모습을 봤는데, “야, 정말 저러다가 몸살 나겠다” 싶을 정도로, 그렇게 열심히 절을 했는데, 선거가 끝나자마자 어떻게 되죠? 금세 태도가 변해서, 오만한 모습의 정치인들을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보아 왔습니까? 선거 전에는 수많은 약속을 했지만, 끝나자마자 빌 공(空) 자 써서, 비어버린 헛된 약속으로 바뀌어 버린 것을 얼마나 많이 경험하고 있습니까? 화장실 가기 전의 마음과, 화장실을 다녀온 후가 달라지는 것이 그게 사람의 마음인 거죠.

힘든 상황 가운데서 우리가 동업하자, 우리가 힘을 합쳐서 함께 무엇인가 이루어보자 하고, 서로 마음을 의기투합해서 하나의 사업체를 시작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가 같이 힘을 모아서, 영원히 변치 말자고 하면서 동업했던 사람들이 조금만 상황이 나아지면, 금세 이기적이 되어 버리고, 그리고 그 마음이 완전히 변해져 버린 그 모습을 보면서, 배신감을 느끼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은 사람은, 능력이 있어도, 그 마음이 너무나도 쉽게 변해버린다고 하기에, 그래서 우리가 사람에게 소망을 둘 수가 없는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야고보서 1장 17절에 말씀해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심이라.” 해시계가 있어서,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그 사이에, 그 해가 움직이는 거에 따라서, 해시계의 그림자가 자꾸 시간마다 변해가듯이, 하나님도 그렇게 때마다, 시마다 변해가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에게는 회전하는 그런 자조차 없는, 변하지 않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에 대한 그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인류 최초로 죄를 범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멸망을 당하게 된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겠다고 하는 약속을 해주신 것이죠. 그런데 그 약속이 도중에 아무 의미 없이 끊어져버린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말씀, 내가 너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고, 복의 근원이 되겠다고 해 주셨던, 그 약속을 도중에 깨 먹은 것이 아니라, 끝까지 지켜주셨기 때문에, 결국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그 아들의 울부짖음을 외면하면서까지,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해 주신,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왜 사람을 의지할 수가 없습니까? 사람을 신뢰할 수 없습니까? 그것은 사람의 호흡이 끊어지면, 모든 계획이 다 수포로 돌아가버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능력도 있고, 마음이 변하지 않아도, 목숨이 끊어져버리면, 더 이상 도울 수가 없어요. 사람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아무리 마음이 변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그 목숨이 끊어져버리면, 모든 것들이 다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죠. 능력이 있으면 뭐해요? 마음이 안 변하면 뭐해요? 그 목숨이 끊어져버리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계시록 1장 8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처음과 마지막이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하신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라 영원토록 변함이 없이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에게만 의지하고 하나님에게만 소망을 둘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의지하게 되면, 반드시 실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정치인들에게 소망을 두었으나, 실망해 버린 경우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정치인들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 어떤 사람에게 소망을 둔다고 하면, 우리는 이내 실망해 버릴 겁니다. 저는 삼 년 전에 부임하면서, 첫 번째 설교로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자”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혼란 가운데 있던 그 상황 가운데서 부임했을 때, 우리 성도님들이 저를 향해서 가지고 있는 기대와 소망들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고 의지할 것은 쓰러질 수밖에 없는 인간을 의지할 것이 아닌, 영원히 변치 않으실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망하게 되어 있고, 사람을 의지하면 실망하게 되어 있고,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목회자가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만이 우리의 참된 믿음의 대상이요, 소망의 대상이라고 하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인데, 지금 이 순간에 우리가 다시 들어야 될 메시지도 사람을 의지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해야 된다고 하는 이 말씀을 다시 한번 깊게 새길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지만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그러니까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해야 된다고 하는 이 말씀은 그러니까 우리가 정치에 대해서 지지하거나, 후원할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그냥 중립만 지켜야 된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결코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분명히 정당 가운데는 어떤 정당이 다른 정당보다는 더 좋은 정당이 있을 겁니다. 어떤 정치인이 다른 정치인보다 더 나은 정치인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정치는 그 악한 정치인들 가운데서, 좀 덜 악한 정치인을 선택하는 것이 그것이 정치일 것입니다. 그래서 기왕이면 좋아 보이는 사람을 선택해야 되고, 기왕이면 좋아 보이는 정당을 선택하는 것이 옳습니다.

사실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자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하는 이 말씀은 그러니까 목회자를 그냥 무시해도 괜찮다고 하는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오해할 때가 많은데요. 이 말씀을 그러면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가? 어쩌면 돈이나 약의 경우에 비유할 수가 있을 것 같아요. 우리는 병에 들면 약을 먹습니다. 의사의 치료를 받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믿음은 무엇입니까? 약이 나를 살리는 게 아니라, 나를 낫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 낫게 하시는 분이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이 약에 달린 것이 아니라, 돈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달려 있다고 하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돈도 마찬가지죠. 우리가 돈을 가지고 있어야 삽니다. 돈이 없어서, 없으면, 못 사는 거죠. 물질이 없으면, 못 사는 겁니다. 그런데 그 물질을, 그래서 많이 얻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물질이 있어야 살게 되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고백이 무엇이냐면, 돈이 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산다고 하는 것이 믿음의 고백입니다.

불신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냐면, 하나님을 계산에 넣지 않습니다. 그래서 돈이 나를 살리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서, 하나님이 나를 살린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돈이 나를 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돈을 얻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돈이 나를 살리는 것이니까, 어떤 방법이든 그 돈을 넣어야만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그래서 n번방 사건이 터지는 거예요. 돈을 벌 수만 있다고 하면, 사람들을 수단화하고, 착취하고 남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고, 내가 돈을 벌 수만 있다고 한다면, 무슨 악한 짓을 해서라도 돈을 벌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불신자들의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런 기회가 우리들에게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나를 살리는 것이지, 돈이 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믿는다고 한다면, 우리 성도들은 그 돈 때문에 인생을 그르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살리시기 때문에, 그러한 불법적인 돈을 거부할 수 있는 것이 믿음에 믿음이 있는 사람들의 결단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하는 이야기는, 그러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가 나를 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크리스천들 중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정치인을 더 의지하고, 이데올로기를 더 의지하다 보면, 그러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는 겁니다. 서로 정치적인 입장이 다르다고 미워하게 되는 것이고, 그리고 자신의 정파를 위해서라고 한다면 가짜 뉴스도 자꾸 만들어서 퍼뜨리는 등,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정치인을 의지하고, 이데올로기가 나를 살릴 것처럼 그렇게 착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들을 향해서, 오늘 우리가 다시 한번 기억해야 될 말씀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의지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해야 된다고 하는 이 말씀을 다시 한번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사실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다고 하는 이 말은, 그러니까 사람을 완전히 다 포기해버리라고 하는 말씀은 아닙니다. 예전에 소개했던 것처럼, 이 표현은 과장법적 대조라고 하는 표현법입니다. 과장법적 대조라고 하는 표현법이 무엇입니까? a가 아니라 b다라고 하는 것을 강조하는 식의 표현 방법을 가리켜서 과장법적 대조라고 하는 표현법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요. 이 표현을 통해서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가 무엇이냐면, b가 정말로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겁니다. b가 정말로 중요하다고 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뭐라고 표현하냐면 a가 아니라 b다라고 말하는 거게요. 그런데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이냐면, a를 진짜로 부정하는 게 아니에요. a를 논외로 하자고 하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된다고 하는 이 말씀은, 그러니까 사람을 완전히 무시해 버려도 괜찮다고 하는 말씀이 아니죠.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하는 얘기는, 그러니까 떡을 안 먹어도 살 수 있다고 하는 말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떡으로 사는 게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라고 하는 그렇게 수사학적으로 부정하는 것이죠.

종종 우리 크리스천들은 이런 표현법을 오해합니다. 그래서 외모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면이 중요하다고 이야기를 하면, 그러니까 내면이 중요하다고 했으니까, 외면은 그냥 아무렇게나 막 하고 다녀요. 거지같이 하고 다녀도 괜찮다고 하는 말로 착각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강조점이 거기에 있는 게 아니에요. a를 부정하는 데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b를 강조하는 데 강조점이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하는 그 말은, 그러니까 친구도 미워하고, 사람들하고는 관계도 끊어버리고, 사람들하고 사귀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고,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고, 그냥 나는 주님 주님만을 믿습니다. 교회에 와서 찬양만 하고 감사만 하고 예배만 드리면 그게 제일 좋다고 하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방송반을 향해 – 이제 저를 좀 보여주고), 우리는 헛된 것에 소망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눈앞에 돈이 제일 중요한 것처럼 보이고, 때로는 건강이 제일 중요한 것처럼 보이고, 때로는 사람이 제일 중요한 것처럼 보이고, 때로는 어떤 지식이 제일 중요한 것처럼 보이는데, 그런데 성경의 가르침은 그딴 것들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진정으로 우리가 믿고 소망을 두어야 할 유일한 분이시라고 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믿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 할까요? 그 하나님은 바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어쩌면 정치인들은 선거 때는 엎드려 절을 했지만, 4년 동안 코빼기도 안 보일지 몰라요. 선거 때 외에 만나보신 적 있어요? 아마 그럴지 몰라요.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단 한 번도 중단되는 적이 없어요. 우리가 하나님을 모른다고 외면할 때도, 우리가 죄를 짓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도,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해버리고 끝내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를 끝까지 사랑해 주셨기에,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라도,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셔서, 그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만드시고, 기어이 저와 여러분들 하나님의 자녀로 품어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배신을 당해 보셨습니까? 믿었던 도끼에 발등이 찍힌 적이 있습니까? 그 어떤 사람도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서, 마음이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가고 계십니까? 이런 상황 가운데서, 우리가 엉뚱한 데서 해답을 찾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남편이 미덥지 못하다고,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서, 거기서 소망을 찾을 것도 아니고, 아내의 사랑을 확인할 수가 없어서, 다른 여성을 통해서 내 마음에 허전함을 달랠 것도 아니고, 우리들의 인생을 돈에 걸어서, 돈이라고 한다면 그 모든 것들을 다 포기하면서, 돈을 얻기 위해서 노력할 것도 아니고, 마치 이데올로기나 정치가 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처럼, 거기에 우리의 온 인생을 걸면서 살 것이 아니라,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서라고 하면, 그 아들을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신, 그 하나님 앞에 그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를 배부르게 못할 것을 추구하면서, 헛된 것들을 따라다니면서, 또 배신당하고 또 창피만 당할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너무나도 넓으셔서, 우리가 찾아오면 단 한 번도 거절하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영접해 주시는, 그 하나님 앞에 날마다 날마다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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