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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시려 하시는 하나님(출 4:24-26)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려고 애굽을 향해 내려갔다. 그 길에서 하나님은 모세(또는 그의 아들)를 죽이려고 하셨다. 요나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멀리 도망가는 것도 아닌데, 왜 하나님께서는 갑자기 모세(또는 그의 아들)를 죽이려고 하신 것일까?

십보라가 이런 절박한 순간에 아들에게 할례를 베풀었다. 그래서 모세(또는 그의 아들)는 죽지 않고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따라서, 성경에는 분명하게 그 이유를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모세의 아들에게 할례를 시행하지 않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그 이유를 추측할 수 있다. 하나님의 율법은 모든 남자 아기에게 할례를 행하라는 것이었고, 만일 할례를 시행하지 않으면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경고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율법을 따르지 않고 불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구약을 보면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께서 심판하셨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축출되어야 했고, 불평과 원망을 하던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40년간 광야 생활을 해야 했으며, 불뱀에 물려 죽을 상황에까지 내몰렸던 적이 있다. 또한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된 이스라엘 민족이 우상을 섬기게 될 때, 이방 민족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곤 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지금 할례를 시행하라는 말씀에 불순종한 모세를 다루고 계신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이 문제를 다루시는 것일까? 사실 이 문제는 지금 생긴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문제였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를 때에도 가지고 있었던 문제였다. 그런데 그때는 왜 침묵하셨는가? 그때는 이 문제를 다루지 않으셨다가 지금 이 문제를 다루시는가? 아마도 완벽한 사람을 부르기를 원하셨다면, 그 누구도 부름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 하지만 일단 부르심을 받았다면, 그 상태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변화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다. 하지만 이제 사명을 감당하러 가는 길에, 하나님은 그의 문제를 해결하자고 하시는 것이다.

전염병 등 여러 가지 재난이 있을 때, 도대체 저 사람은 무슨 죄를 지어서 그런 비극을 당하는가 하고 물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아주 매정한 일이 될 뿐만 아니라, 옳지 않는 일이다. 고난을 당하는 사람이 있다면, 불쌍히 여기도 함께 울어주고 도와주어야 한다. 비록 그가 원수일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내가 어려움을 겪는다면 어떨게 해야 하는가? 우리 자신에게 회개할 것은 없는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악한 길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때로는 고난을 주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가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그냥 방치하시지 않는 분이시다.

물론 하나님의 징벌이 무서워서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할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주셨기 때문이다.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사랑해야 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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