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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과 말씀(마 4:1-4)

왜 예수님은 돌로 떡을 만들라는 제안을 거절했을까? 십계명에 돌을 떡으로 만들지 말라는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것은 괜찮은데, 돌로 떡을 만드는 것은 왜 괜찮지 않았을까?

그 이유를 알려면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굶주렸을 때 보여주었던 반응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그때 이스라엘 민족은 불평하며 하나님을 원망하였고, 애굽에서 살던 때를 더 그리워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을 불신했기 때문에 나오는 모습이었고, 사탄이 그들의 마음을 충동질했을 때 그 유혹에 미혹되어버렸기 때문에 나오는 반응이었다. 그들은 먹을 것이 판단의 기준이었다. 그래서 먹을 것이 없을 때, 불신앙의 모습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신명기 8:3의 말씀으로 사탄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이 떡(양식)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이 말씀의 의미는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먹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사탄의 요구는 우리의 기준을 먹을 것에 두라는 유혹이었고, 예수님은 먹을 것이 있느냐 없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생생한 관계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사탄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 아들 됨을 “돌로 떡을 만드는 것”으로 증명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런 요구는 십자가 위에서 또다시 들렸다. 사람들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자신을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러한 소리에 반응하지 않으셨다. 그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됨의 권능은 그런 증명을 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12 영이 되는 천군을 동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우리들은 언제나 이 세상에서 행복하고 성공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렇게 되지 않을 때에는 이내 실망해버린다. 하나님은 그런 것을 위해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우리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하나님을 내버리곤 한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전쟁의 포화가 울리는 곳에서도 엄마의 품 안에 있으면 아기는 평화로울 수 있듯이, 이 세상이 아무리 악하게 돌아간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라면 두려워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이 세상의 행복이나 성공을 기준을 삼지 말고, 오직 하나님과의 생생한 관계를 더 중요시 해야 하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우리들의 업적을 기준으로 삼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우리의 업적으로 치자면 우리는 당장 심판을 당해도 할말이 없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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