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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보셋(삼하 2:8-11)

사울이 죽은 후에 사울의 군사령관이었던 넬의 아들 아브넬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옹립하였다. 그가 왕이 된 것은 40세였고, 2년간 왕노럿하게 되었다. 이렇게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운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사울의 뒤를 잇는 왕으로 세우셨기 때문이다. 결국 아브넬은 하나님의 뜻에 반한 행동을 한 셈이었다.

비록 다윗에게 기름을 부은 것은 은밀하게 이루어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제2대 왕으로 삼으신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았다. 그러면 그러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했었다. 그런데 왜 아브넬은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웠을까? 그것은 사울 왕가에 대한 충성심 때문이 아니었다.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을 살펴보면, 아브넬이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운 것이 충성심에서 온 것이 아니었음을 잘 알 수 있다.

오히려 그는 왕을 세우되, 그 왕을 그저 얼굴 마담으로만 내세우고 모든 권력은 자신이 쥐길 원했다. 이것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만일 다윗을 왕으로 모시고 함께 했더라면 아브넬과 함께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사울의 사람이었다고 배타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다윗에게 다가가기만 하면 모두에게 유익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브넬은 그것을 거부하고,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우고 자신이 모든 권력을 쥐기 원했던 것이다.

사실 그게 우리들의 마음이다. 우리들은 우리들에게 왕이 되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왕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다스리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게 이스보셋이다. 명목상 왕이면서 나를 위해 종노릇해줄 수 있는 사람이 이스보셋이다. 우리들의 신앙이 종종 왜곡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그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내가 왕이 되고 싶어한다. 그저 하나님은 나의 계획을 축복해주는 역할만 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사울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사사기 17장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미가라는사람의 집에서 우상을 만들고 축복해줄 제사장을 구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결국 이스보셋은 아브넬을 만족시켜줄 수 없었다. 그게 우리들이 우상으로 세운 것들의 한계다. 우리는 무엇을 이스보셋과 같은 왕으로 세우고 있는가? 결국 아무런 힘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복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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