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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은 어디서 오는가?(삿 2:11-23)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였다.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 40년 동안에도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었다. 그들의 원망과 그들의 불신앙은 어느 정도 이해될만한 것이었다. 먹을 것이 없었고 마실 것이 없었고, 광야에서의 삶은 고달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것들이 사라져버린 상황에서는 이제는 감사하면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또다시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겼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런데 이게 우리가 만나는 현실이다. 이 세상의 그 어느 곳도 사탄의 유혹으로부터 안전한 영적인 무균실은 없다. 기독교 학교에 자녀를 보내면 안전할까? 신학교나 수도원에 들어가면 안전할까? 그런 곳은 없다. 심지어 예배의 자리에서조차 우리는 죄에 감염된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게 된 것은 바로 하나님께 제사드리던 현장에서부터 비롯되지 않았던가? 종종 사람들은 교회를 보면서 실망한다. 교회는 세상과 다를 것이라 생각했는데,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넘어지기 쉽고, 늘 죄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야만 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셔야만 했다. 우리는 죄를 지을 때마다 십자가 앞에 나가야 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기 위하여 악에서 구해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우상을 섬기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이방 민족을 들어서 이스라엘 민족을 치셨다. 물론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이유 없이 올 때도 있다. 요셉, 욥, 다윗, 바울 사도가 고난을 당한 것은 그들이 죄를 지어서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가 죄를 저지르고 하나님에게서 떠난다면 고난을 당하게 되어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회초리를 드는 부모님처럼 우리가 죄를 저지를 때 회초리를 드실 수 있다. 우리를 책망하셔서 회개케 하기 위해서이다. 만일 죄를 짓는데도 불구하고 고통을 당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오히려 더 위험한 것이 될 것이다.

내가 당하는 고난이 그냥 오는 것인지 내가 지은 죄 때문인지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양심을 심어주셨기 때문이다. 만일 죄를 지어서 고난을 당한다면,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셔서 용서해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정말로 사랑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 기꺼이 내어주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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