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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정복(삿 1:16-36)

유다 민족은 가나안 땅을 정복해나가는 가운데 산지에 있는 거민들을 쫓아낼 수 있었지만, 골짜기에 있는 거민들은 쫓아낼 수 없었다. 그 이유를 사사기 1:19에서는 골짜기의 거민들이 철병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은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그 어떤 어려운 난관이 있다 할지라도 능히 이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애굽 땅에서 나올 수 있었고, 홍해 바다를 건널 수 있었고, 여리고성도 무찌즐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골짜기의 거민들을 물리치려고 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셨을까?

그 이유를 사사기 2장에서는 설명한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민족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나안 족속과 언약도 맺지 말고 제단을 헐어버리라고 하셨건만, 이스라엘 민족은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였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하지 않았고, 결국 그들은 가나안 거민들을 쫓아낼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이유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항상 기억하면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사기 1장에서는 가나안 민족을 정복하지 못한 자연스러운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철병거 때문에 진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이 강성해진 후에야 가나안 족속을 정복할 수 있었다(삿 1:28, 35). 기적만 하나님의 법칙이 아니라, 노력하는 자가 그 만큼의 결과를 얻는 것도 하나님의 법칙이다. 믿음은 요행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종종 우리들이 믿음을 요행으로 오해할 때가 많지만 말이다.

사탄은 예수님을 유혹하면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보호해주실 것이 아니냐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믿음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은 우리가 수고하고 애쓰는 가운데 우리의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수 있도록 해주시는 것이다(시 128:1-2).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하나님의 기적이 있을 것을 기대하는 것은 잘못이다.

기독교의 복음은 종종 오해될 때가 있다. 우리의 공로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의 메시지는 그러니까 마음대로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방종의 메시지로 오해될 때가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아무리 우리가 연약해도 승리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그러니까 펑펑 놀아도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요행의 메시지로 오해되기도 한다. 그렇지 않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일해야 하고, 일하면서 기도해야 한다. 기도만 하고 일하지 않는다면 광신이나 미신일 것이고, 일하면서 기도하지 않는다면 불신일 것이다. 참된 믿음은 일하면서 기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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