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닫기

하늘에 창을 내신들(왕하 6:24-7:2)

이스라엘 민족을 침공했던 아람 나라 군대를 선대하여 돌려 보냈을 때,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했다고 왕하 5:23에서 기록하고 있는데, 바로 다음 절인 24절에서는 아람 왕 벤하닷이 사마리아를 에워싼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찌 된 일일까? 사실은 이게 인생이다. 내가 참고 인내하며 원수를 사랑으로 갚으면 모든 문제가 한 방에 해결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한 경우를 많이 경험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원수를 갚지 말고 선하게 대해야 하는가?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아람 왕이 사마리아를 포위하자 사마리아 성은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되었다. 물가는 상승해서 먹을 것을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이렇게 힘든 일이 있을 때, 이스라엘 왕은 엘리사 선지자를 향해서 분노가 폭발하였다. 엘리사를 죽이고야 말겠다고 했다. 엘리사를 죽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닌데, 왜 이스라엘 왕은 이런 말을 하는가? 사실 엘리사는 죽여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협력해서 위기를 극복해야 할 동지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왕은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못하고 죽이겠다고 달려든 것이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한다. 우리가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 것이라고 말이다(갈 5;14-15).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우리의 동료가 아니다. 그런데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사탄은 우리의 가족이나 동료를 향해서 싸우도록 충동질한다. 우리가 정작 싸워야 할 대적은 우리의 가족이나 동료가 아니라, 사탄이다. 우리를 무너뜨리는 사탄과 영적인 싸움을 해야 한다.

다윗은 골리앗을 무찌르러 갈 때에 친 형 엘리압을 만났다. 엘리압은 다윗을 향해서 싸움을 걸어왔다. 그때 다윗은 엘리압과 싸울 수도 있었다. 사실 다윗의 마음속에서는 사탄이 그렇게 엘리압과 싸우라고 충동질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다윗은 그러한 충동질에 넘어가지 않았다. 다윗의 싸워야할 대적은 엘리압이 아니라 골리앗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다윗은 골리앗과 싸우러 가기 전에 마음속에서 엘리압과 싸우라고 충동질하는 영적인 골리앗과 같은 사탄을 먼저 무너뜨렸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누가 우리의 대적이고, 누가 우리가 협력해야 할 대상인지를 잘 알아야 한다.

놀라운 것은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 왕과 싸우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오히려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원의 소식을 선포해주었다. 내일이면 하나님의 구원이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엘리사와 같이 행동해야 한다.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엘리사처럼 행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를 지으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향해서 놀라운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 심지어 그 아들을 내어 주시면서까지 말이다.

Loading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