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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갑옷과 다윗(삼상 17:31-40)

만일 엘리압과 같은 사람들만 있었다면, 다윗은 골리앗과 싸울 수 없었을 것이다. 비난하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만 있었다면, 골리앗과 싸워보지도 못하고 그냥 주저 앉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있었다.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그 어떤 사람이 다윗의 말을 듣고 다윗을 사울 왕에게로 인도하였다. 그래서 다윗은 골리앗과 싸울 수 있었다.

역사는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역사책에는 몇몇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만 기록되겠지만, 실제 역사는 그런 이름 없는 무명의 사람들이 자기 자리에서 충실하게 그 사명을 감당해 나갈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절망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헌신을 요구하고 계시고 바라보시기 때문이며, 우리들의 작은 헌신들이 결국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했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도우셨는데, 미래에도 도우실 것을 확신했다. 그는 과거를 통해서 미래를 맞이할 수 있었다. 과거에 도우셨던 하나님이 미래에도 도우실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우리는 과거를 통해서 배워야 한다. 그 옛날 기적을 행하시며 이스라엘을 도우신 하나님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두려워 할 것이 아니다.

사울 왕은 다윗에게 자신의 갑옷을 입혔다. 하지만 다윗은 그 갑옷을 벗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전투에서 사울로 하여금 승리하게 했던 바로 그 갑옷을 벗은 것이다. 아무리 과거에 뛰어난 결과를 이루어낸 것이라 할지라도 다윗에게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울은 그런 다윗을 인정했다. 사울의 생애에서 가장 잘 한 일은 자신의 갑옷을 철회하고 다윗의 방식대로 싸우게 한 일일 것이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교훈을 배워야 하기도 하지만, 과거가 우리의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과거가 절대화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로부터 배운다고 말을 하지만, 정작 과거의 역사가 자존심이 되어버리고 우상이 되어버린다면 그 교회는 망하게 되어 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들이 그렇다. 미래를 보지 못하고 그저 과거의 향수에만 빠져버려서 미래 세대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교회들은 머지않아 몰락하고야 말 것이다. 적어도 이 점에서 우리는 사울 왕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각각 다르게 창조하셨다. 다른 사람에게 통했던 방법이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무조건 다른 사람들을 따라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일 것이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와 특징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저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예수님은 다윗처럼 맨 몸으로 십자가를 향해 나가셨다. 그리고 사탄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우리를 구원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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