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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다시 생각한다. 영화 백두산을 보고

영화 백두산은 순 엉터리 영화다. 만화 같은 설정에 그럴듯하지 않은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내 생각에 7번 갱도에서 핵을 터트리면 오히려 그 폭발이 더 가중되어 더 큰 재앙이 될 것 같은데 말이다. 하지만 영화관을 빠져나오면서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역시 이병헌이라는 감탄이 나왔고, 감동과 재미 코드가 적절하게 섞여 있어서 영화를 보내는 내내 주위 사람들에게는 죄송하게도 큰 소리로 웃거나, 조용히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사실 이 영화는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아마겟돈과 설정이 비슷하다. 백두산 4차 화산폭발로 인해 한반도가 재앙을 맞기 전에 북한이 소유하고 있는 핵을 탈취해 백두산 갱도에서 터트려 그 폭발을 둔화시킨다는 스토리는 지구를 향해 떨어지고 있는 소행성에 구멍을 뚫고 그 안에 핵탄두를 넣어 공중 분해시켜 지구를 구한다는 아마겟돈의 스토리와 비슷하다. 마지막 순간에 리준평(이병헌)이 혼자서 핵탄두를 터트리는 설정은 브루스 윌리스 가 예비 사위를 밀쳐내고 혼자 핵탄두를 터트리는 일을 맡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영화들을 보고 나오면서는 뭔가 늘 2% 부족한 아쉬움이 있었던 것과는 달리, 이 영화는 흥행의 요소들을 골고루 갖추었다. 그래서 이 영화 백두산은 근래 나온 영화 중에 최고의 명작이다. 아마겟돈과 비슷하다는 흠이 있지만, 어차피 100% 새로운 창작은 없으니 그런대로 박수를 쳐줄 수 있겠다.

영화에서는 아버지가 나온다. 북한의 리준평(이병헌)이나 남한의 조인창(하정우)나 아버지다. 내 목숨을 버리더라도 가족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뿐이다. 조인창(하정우)은 임무를 맡아 북으로 출발하기 전 자신이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이 임무를 피할 수 없었다. 그게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었다. 리준평(이병헌)도 마찬가지다. 기폭장치를 조인창(하정우)에게 넘기고 빈손으로 보천으로 간다. 그러면 자신이 위험에 처할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게 자신의 유일한 피붙이를 살리는 길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조인창에게 자신의 딸을 맡기고 혼자 핵을 터트린다. 그러한 희생에 우리는 조용히 감동을 받는다. 그렇구나. 그게 아버지의 사랑이구나.

현실에서 아버지란 이름은 언제나 우리들에게 낯설다. 뭔가 비정상적으로 행동하기도 하고, 괴팍하기도 하며, 가족에게 사랑을 보이기보다는 이기적인 사람이나 독재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에게서 받는 상처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래서 늘 아버지는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멀다. 그런데 영화에서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을 버린다. 사실 그게 아버지다.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서라면 모든 걸 버릴 수 있다. 심지어 목숨까지도 말이다. 그런데 매일의 삶 속에서는 따뜻하게 가족들에게 손을 내밀지 못한다. 그래서 아버지는 언제나 먼 존재이다. 리준평(이병헌)을 만난 딸 순옥은 아빠가 반갑지 않다. 아빠에게서 도망간다. 그게 늘 만나는 현실 속의 아버지이다. 아버지의 마음속에는 딸을 단 한 번도 잃어버린 적이 없고, 그 생각을 지운 적이 없다. 하지만 딸은 아빠가 두렵다. 딸은 아빠에게서 도망을 쳐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아빠는 마음으로 사랑했지만 그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것에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버릴 수 있지만,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잔잔하게 사랑을 보여주는 것에는 실패하는 것이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내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아버지들이 자녀들을 위해서는 왜 매일의 삶 속에서는 따뜻한 말 한 마디 해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까? 왜 우리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영화 속에서나 대리만족해야 할까?

아쉽게도 우리는 늘 실패한다. 사랑하는 마음은 있는데, 그걸 표현하지 못할 때가 더 많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늘의 아버지가 계시다. 딸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린 리준평처럼, 주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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