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닫기

마음이 따뜻해지게 만드는 친절과 미소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전도사님이 커피를 한 잔씩 태이크 아웃 해서 마시자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그날 먹은 점심 식사가 뭔가 아쉬운 느낌이 있었던 터라, 그것은 참 좋은 생각이라고 동의했다. 차를 타고 스타벅스를 향했다. 그리고 차를 타고 주문했다.

“아이스 돌체 톨 석 잔 주세요.” 이 말만 하면 되는 주문인데, 한동안 주문을 받는 사람과 몇 가지 질문을 주고받았다. “달달하게 해주세요.” 전도사님의 주문이었다. 그러자 “그럼 시럽을 두 번 넣겠습니다.” 직원이 응답했다. 그러자 그렇게 하면 너무 달 것 같아서 그런지 “아네요. 그냥 보통으로 주세요.”로 정정했다. “사이즈는 뭐로 할까요? 그란데로 할까요?” “그란데가 뭐에요? 그냥 톨로 주세요.” “아니, 한 잔이 아니라 세잔이에요.” 그러자 가격이 5천 얼마에서 만 6천 얼마로 훌쩍 뛰어버렸다. “무슨 커피 값이 이렇게 비싸죠?” 볼멘소리도 나왔다. 하긴 점심 식사로 7천 원짜리를 먹었는데, 커피로 5천 원이 넘는 것을 먹어야 한다니 뭔가 불만이 생길 법도 했다. “차라리 만 2천 원짜리 좀 더 맛있는 점심을 먹는 게 더 나을 뻔했잖아.” 속에서 벌써 계산이 빠르게 되었다.

그런데 그 직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면서 아주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바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자, 여기 있습니다. 빨대를 꽂아 드릴까요?” “맛있게 드세요. 좋은하루 되세요.” 그 직원의 미소와 친절함에 우리도 따뜻하게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그 자리를 빠져나오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과연 이 직원은 정말 기쁨으로 일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렇게 손님을 응대하라고 훈련을 받아서 그러는 것일까?

아마도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 예전에 대구의 유명 한식당에서도 직원들 전체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면서 손님들에게 서비스하는 모습이 아주 큰 감명을 받았는데, 이렇게 큰 사업장이라면 그런 훈련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그것이 본심이든 훈련을 받아서 그렇게 하는 것이든, 기분은 좋았다. 나를 친절하게 대하는 그 모습에 기분이 좋아져서 나도 그들에게 따뜻하게 인사하고 나왔으니까 말이다.

이런 모습을 회복하면 어떨까? 각 가정에서 부부가 서로를 대하는 대화의 모습에서 만면에 웃음을 짓고 친절하게 따뜻하게 대하는 훈련을 하면 어떨까? 자녀들을 대하면서 그들에게 따뜻하게 웃음을 짓고 대해주면 어떨까? 내가 일하는 직장에서 서로에게 웃음을 지으면서 밝게 일하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웃음은 상대방을 기쁘게 만들고 행복하게 해주며, 동시에 그들이 행복해지기 때문에 다시 웃음을 지어주게 되어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우리는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잘못을 지적하고 혼내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그러면 잘못이 고쳐지고 바른길로 갈 수 있다고 기대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바른길로 가는 법은 거의 없다. 오히려 역효과만 낼 뿐이다. 부모로부터 혼나고 지적당하고 꾸중을 당하는 자녀는 바른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잘못된 길로 갈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사랑으로 감싸주고 잘했다고 칭찬하고 수고했다고 격려하며 웃음으로 대해줄 때 우리 자녀들은 힘을 얻는다. 웃는 얼굴에 침을 밷지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 내가 웃어주고 친절을 행하면, 다시 그 친절은 내게 돌아온다.

커피 한잔을 마셨을 뿐인데, 오후 내내 행복하다.

Loading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