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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설교에 대하여

김** 목사의 설교에 대하여

(열린 신앙 톡투유를 앞두고 김** 목사의 설교에 대하여 문의가 들어 왔습니다. 이 문제는 톡투유 시간에 답하기에는 복잡해서 지면으로 대신합니다.)

먼저 이 분의 설교를 다 들어보지 못해서 전체적인 평가는 내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다분히 많을 수 있는 성경 해석법을 사용하여 특이한 주장을 하는 것을 볼 때, 이 분의 설교는 그렇게 추천하고 싶지 않으며 종종 잘못된 가르침이 나오는 것에 대하여 경계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분의 설교는 히브리어 헬라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그래서 좀 있어 보입니다만,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다고 성경 원어는 그렇게 엉터리로 사용하면 안 되는 대표적인 케이스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성경 원어를 기초만 알고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이 보여주는 실수들을 너무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원어를 많이 사용한다고 해서 성도님들은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냥 단어 나열하는 수준이라 보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학교” 말이에요. 이것은 “스쿨”인데 스쿨에 가면 공부할 수 있어요. 이런 식으로 영어 단어 추가하여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더구나 이 분은 어떤 단어가 가진 “사전적 의미”를 성경 해석에 무분별하게 적용합니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19:30을 해석할 때, “머리를 숙이셨다는 것은 머리를 두다 머리를 넘겨주시다 머리로 오다”라는 그런 뜻이라고 주장합니다. “영혼이 떠나시니라”도 단순히 죽었다는 뜻이 아니라 “오다 주시다 넘겨주시다”의 뜻이 있으므로 “그리스도의 영으로 성령으로 진리로 그리스도로 알아먹는 성도들에게 오시다”라는 뜻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단순히 죽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머리를 교회에 주신 것이고(머리를 숙이다의 독특한 해석), 성도들에게 영으로 오셨다(영혼이 떠났다의 독특한 해석)라고 해석합니다. 한 마디로 엉터리 주장입니다.

이런 해석은 “배”라고 하는 한국말이 신체의 일부를 나타낼 수도 있고, 바다 위에 다니는 선박을 의미하기도 하고, 과일을 의미할 수도 있고, 곱절을 의미할 수도 있으니까,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눅 5:2)를 해석할 때, “여러분 어부들이 배에서 나왔다는 것은 단순히 그냥 선박에서 나왔다는 뜻이 아니에요. 그건 한국어 원어를 보니까, 신체를 뜻하기도 하는데, 그러니까 자신의 ‘배’ 즉 모든 탐욕을 집어 넣는 그 ‘배’에서부터 나왔다는 뜻이고,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에요”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엉터리 주장입니다.

이분의 설교에서 기존의 신앙의 가르침에서 멀어진 극단적인 해석들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머리를 숙이셨다는 것은 그냥 죽게 되니까 더 이상 힘이 받쳐줄 수 없어서 고개를 숙이신 것뿐입니다. 영혼이 떠나가셨다는 것도 그냥 예수님을 움직이던 살아있는 생명이 떠나가셨음을 표현하는 것일 뿐입니다. 여기에 어떤 과도한 영적인 해석을 무리하게 집어넣는 것은 잘못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더 나아가 이 분은 진리를 아는 것에 대한 강조를 많이 하는데, 이것은 초대교회 이단의 한 부류였던 영지주의적인 경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지주의 이단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보기보다는, 어떤 특별한 영적인 지식을 깨달아야 구원을 얻는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런 지식은 아무나 얻을 수 없고, 몇몇 사람들만이 특별하게 깨달을 수 있는데 그런 지식이 구원을 얻게 만든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분은 자신의 엉터리 해석을 마치 무슨 특별한 계시나 되는 것처럼 참된 구원을 받은 성도가 되는 조건인 양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주 위험한 경향이라 하겠습니다. 모든 이단들이 보여주는 일반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들만의 독특한 해석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 분의 다른 주장을 들어보면, 에덴동산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 나무가 2개의 나무 열매가 아니라 하나의 나무 열매이며 어떤 마음으로 먹느냐에 따라 선악과가 될 수도 있고 생명나무의 열매도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분의 논리라면,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실 때 나무를 하나만 만드셨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습니다. 창세기 1:11, 12에서도 나무를 뜻하는 “에츠”라는 명사가 단수로 사용되었으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히브리어에서 나무가 단수로 사용되었어도 여러 나무를 의미하는 집합명사의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것입니다. 이것은 히브리어의 기초에 해당하는 것인데요. 이분은 히브리어 헬라어를 기초 수준에서도 벗어나지 못한 것을 가지고 엉터리 주장을 그렇게 자신 있게 펼치니 아연실색할 뿐입니다.

이 분의 논리 전개는 논리의 전개에 있어서 근거 없는 비약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단어가 연결만 되면 논리적 비약을 해버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성경을 오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분의 설교를 추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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