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닫기

새해 표어 만들기

한 해가 빠르게 지나가고 벌써 12월이다. 2018년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되돌아보면서 다시 2019년을 준비해야 하는 때이다.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2018년을 잘 마무리할 수 있는지, 그리고 2019년을 어떻게 준비해야 어설프게 시작하지 않고 잘 시작할 수 있는지 생각이 깊어진다. 아마 대부분의 목사님들은 내년도 교회의 방향을 벌써 정하고 그것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방향들도 세웠을 것이다. 페이스북에 보니 수많은 동료 목사님들이 내년도 새해 표어들을 올려놓았다. 그 가운데에는 정말 동감이 가는 좋은 표어들이 많이 있다.

이렇게 표어를 만드는 것은 아주 유익한 일이다. 방향을 잡지 않으면 향방 없이 헤매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소중한 시간과 자원을 허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이 그리 길지 않은데,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매달리다가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 채 흐지부지 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목표를 바로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서 흔들림 없이 매진해나간다면, 기대했던 그 목표에는 온전히 도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어떤 성과는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일에는 목표를 세우는 것이 우선일 테다.

일본 출신의 메이저 리거인 오타니 쇼헤이는 아마도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아주 위대한 선수이다. 그는 투수로서도 뛰어난 기량을 보일 뿐만 아니라, 타자로서도 아주 뛰어난 기량을 보이고 있는데, 그가 어떻게 이렇게 뛰어난 선수가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시절에 야구 8개구단의 드래프트 1순위가 되겠다는 목표로 만다라트(Mandalart)를 만들었다고 한다. 만다라트는 큰 도화지에 가로 세로 9칸씩 모두 81칸의 사각형을 그린 후, 정 가운데에 자신의 최종 목적을 적고, 그 주위의 8개 칸에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하위 목표를 적은다음, 다시 각각 그 8개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8개의 세부 실천방향을 적는 기법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오타니는 성공의 요소에 “운”이라는 목표도 세웠는데, 그 운을 잡기 위해서는 인사하기, 쓰레기 줍기, 부실 청소, 심판을 대하는 태도, 책 읽기, 응원하는 사람, 긍정적 사고, 물건을 소중히 쓰자와 같은 8개의 실천사항을 담은 것이 특징이었다. 운은 그냥 운이 아니라 작은 사랑의 섬김들이 모여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물론 오타니 쇼헤이가 성공한 것은 목표를 잘 세우고 또한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했다는 것에만 돌릴 수는 없다. 사실 그렇게 노력하고도 실패한 사람들이 더 많이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렇게 목표를 세우는 것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목표를 세우는 것의 그늘도 있다. 그것은 그 목표에 우리의 초점이 맞추어지면, 그 외의 것들은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그 목표만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 많은데도 말이다. 목표 지향적 인간이 되는 순간 우리는 비인간화될 위험이 있다. 특히 그 목표가 정말 가치있는 목표가 아닐 때에는 더욱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최고의 갑부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게 되는 순간, 돈은 우상이 되어버리고 결국 돈의 우상 앞에 가족도 사랑도 다 쓸데없는 하찮은 것이 되기 쉽다.

더 나아가 공동체가 가지는 목표는 더 위험할 수 있다. 그것은 사람을 목적으로 보지 않고 수단화해버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동안 나도 늘 새해를 맞이하면서 멋진 새해 표어들을 만들곤 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정확하게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목회하는 것을 나의 목회방침으로 재확인한 이래로, 교회의 새해 표어를 만드는 것을 포기해버렸다. 사람을 수단화하지 않으려는 생각에서였다. 내년도 우리 교회 표어로 “성전 건축을 완성하는 해” 또는 “교회 부흥과 도약을 이루는 해” 정도로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표어 속에서 성도는 수단이 되어버릴 수 있다. 그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이용되는. 사실 표어가 난무한 사회는 북한 사회이다. 천리마 행군을 독려하고, 산업증강을 독려하는 것 등등이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그 속에서 사람은 하나의 수단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새해 표어를 만드는 것을 반대할 마음은 없다. 다만 제대로 된 하나님의 뜻에 맞는 새해 표어가 나오길 기대한다. 개인이든 어떤 공동체이든 말이다. 

Loading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