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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을 배신한 빌라도의 엉터리 재판

예수님은 빌라도의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가장 흉악범들에게나 처해지는 십자가형을 받아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당시 로마는 법률제도가 아주 발달했던 나라였다. 현재에도 사용되는 법률의 기본적인 원칙들이 대부분 로마의 법제도로부터 유래한 것이 많을 정도였다. 따라서 증거주의를 채택한 로마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는 것으로 판결을 받아 방면되어야 마땅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엉터리였다. 죄수였던 바라바는 풀려나고, 아무 죄가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게 된 것이다.

재판장의 자리는 정의를 추구하는 자리이다. 악을 행한 자에게는 형벌을 내리고, 무죄한 자에게는 무죄방면을 해주어야 공의가 서는 것이다. 그럴 때, 그 재판장은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것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빌라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일들은 2천년 전에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도 만나는 현상이다.

LH 직원으로 일한다면, 시민들에게 보금자리를 싼값에 제공하는 목적을 수앻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땅투기를 일삼아 자신들의 배만 불릴 뿐만 아니라, 법을 악용하여 높은 가격에 보상을 받아 결과적으로 보급되는 아파트 값을 올리는 일을 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검찰이나 재판관이라면, 공평하게 법을 집행하여 억울한 일이 없게 만들어야 하는데, 정파적 이익에 따라 자기 편의 악행에 대해서는 눈감아버리고 자기편이 아니라면 탈탈 털어 기소하고, 재판할 때 증거에 눈을 감아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배가 고파서 라면을 훔친 자에게는 수년씩 형을 때리면서 수십억씩 도둑질 한 사람에게는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일이 넘쳐난다. 기자들은 진실을 보도해야 하는데, 진영논리에 빠져 가짜뉴스와 선동을 일삼기도 한다. 환자를 치료해야 하는 의사는 사람을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시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군인들은 오히려 시민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악한 일들이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아니라, 돈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는 우상숭배에 빠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사실은 그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믿고 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믿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빌라도가 틀렸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 부활이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어버린 것 같고, 그래서 완전히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주님은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 악을 이기시고 승리하셨다. 그리하여 빌라도가 틀렸음을 보여주었다. 우리 모두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십자가만 바라볼 게 아니다. 우리는 부활을 바라보아야 하고, 텅 비어있는 십자가를 보아야 한다.

악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고, 악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게 이 세상의 모습이다. 징글징글 맞게 탐욕적인 사람들은 끝까지 생명을 이어나간다. 그런 모습을 보면,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겨우 입에 풀칠이라도 하고 살 수 있을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십자가만 볼 게 아니고, 텅빈 무덤을 보아야 한다. 부활하신 주님을 보아야 한다.

우리의 소망은 돈에 있지 않다. 돈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의 소망은 예수님에게 있다. 예수님은 빌라도처럼 하지 않았다. 예수님이 무죄인 것을 알면서도 군중의 압력에 굴복하여 십자가에 넘겨버리는 엉터리 재판을 하듯, 예수님도 예수님의 자리에서 그 사명을 외면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 것인가? 강도만난 자의 옆을 지나가게 된 것은 그 강도만난 자를 도와주라는 사명이 주어진 것인데, 외면하고 그냥 지나쳤던 제사장과 레위인처럼 예수님도 사명을 망각해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자신에게 있는 권한으로 돌로 떡을 만들어 먹거나, 12 영이 더 되는 천사를 동원하여 십자가 지는 것을 피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하지만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적극적으로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셨다. 그 십자가를 지신 주님에게만 소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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