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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눅 23:44-49)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에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고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예루살렘 성전에는 여러 가지 구역들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이방인들은 이방인의 뜰까지는 들어갈 수 있었지만, 그 안쪽으로는 더 이상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여인들은 여인의 뜰까지는 들어갈 수 있었지만, 더 안쪽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남자들은 이스라엘의 뜰까지는 들어갈 수는 있었지만, 제사장들만 들어갈 수 있는 성소 안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는 저 멀리서 예배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고, 제사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없었고, 대신에 제사장들이 사람들의 기도의 제목을 담아서 그리고 예물을 담고 희생의 제사들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 문 앞에는 이방인의 뜰에서부터 여인의 뜰로 들어가는 그 문에는 경고문이 하나 적혀져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곳을 넘어서 침범하게 되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그런 강력한 경고의 문구가 쓰여져 있는 것인데요. 이방인들이 그 경계를 넘어서 들어가게 되면 죽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여러 가지 장벽들이 놓여져 있는 것이고요. 여인들은 여인들의 위치에서, 남자들은 남자들의 위치에서 더 이상 나갈 수 없는 그런 상황 가운데 있었고, 오로지 제사장들만 그 성전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어 성소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고, 그리고 대제사장은 지성소까지 들어갈 수 있게 되었는데, 일반 제사장들은 그 지성소까지는 들어갈 수 없었고, 오로지 대 대제사장만이 그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죄를 씻은 다음에 그 성전 안에 들어갈 수 있어서, 하나님을 만난다고 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은총을 받으러 나가야 되는데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그 장애 요소가 우리들 가운데 있는 겁니다. 죄와 허물로 가득한 인생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될 때,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그런 안타까운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죽으실 때에, 그렇게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를 나누어 놓았고 하나님 앞에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놓았던 그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는 그런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는데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그 죽음의 사건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가로막혀 있던 그 장애물을 제거하는 사건이었다고 하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당해야 될 그 죽음을 죄의 형벌을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대신 죽으셔서 우리들의 죄악을 없애 주심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저와 여러분들 모두가 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할 수 있는 그런 놀라운 특권이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의 마음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사님에게 기도 부탁을 하고 있는데요. 물론 함께 기도하고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만,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제는 성직자들의 기도만을 들어주시는 것도 아니고, 성직자들의 기도만을 더 소중히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자격도 없고 아무런 권한도 없는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에,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면, 주님께서 찢어놓으신 그 회장 사이로 우리가 직접 나아가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총을 베풀어 주심을 믿고,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기도의 자리로 나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여섯 번째 말씀을 살펴보게 되었는데요. 사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해서 하셨다고 하는 7개의 말씀들의 정확한 순서는 정확하게 이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 사복음서 내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그 말씀들의 순서를 아마도 이것이 먼저 말해졌을 것이고, 그다음에 이것이 말해졌을 것이고 해서 어렴풋하게 그 순서를 정해 놓아서, 아마 이것을 먼저 말했고 이것을 나중에 말했을 것이라고 그렇게 계산해 놓고 있는 것인데요. 사람들마다 그 순서가 조금씩 달라서 어떤 것은 이것이 먼저 말해졌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아니다. 이것이 먼저 말해졌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마지막 여섯번째와 일곱 번째 말씀이 그렇게 의견들이 갈리는 말씀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다 이루었다”가 여섯 번째이고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가 마지막 일곱 번째 말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가 여섯 번째 말씀이고, “다 이루었다”가 최종적으로 하셨던 주님의 말씀이라고 그렇게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순서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아무튼 오늘 우리는 누가복음 23장 46절에 있는 말씀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주님께서 자신의 운명을 아버지 하나님께 맡기고 운명하시는 그 장면을 함께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원래 이 말은 유대인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나님 앞에 했던 기도의 제목이었다고 합니다. 잠자리에 들게 들 때, 잠자리에 들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그 순간에,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하나님께 맡긴다”고 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던 것입니다. 이 모습을 우리가 생각해 본다고 한다면,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돌아가시는 그 순간에 이 죽음이 끝이 아니라, 이것은 마치 잠을 자는 것과 같으며, 이제 잠을 잔 이후에는 우리가 다시 일어나 그다음 날에는 다시 활동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장 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다시 일어나 부활할 거라고 하는 소망을 가지고,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죽으시게 되는 것이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일 것입니다. 남성들은 군대에서의 그 기간이 너무나도 힘들어서, 그때 고통이 너무나도 힘들어서, 늘 말만 하면 그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 것이고, 여성들은 출산할 때 그 고통이 너무나도 커서 그것을 늘 기억하게 되는데요. 사실 가장 큰 고통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고 한다면, 어쩌면 십자가 위에서의 고통이야말로 가장 큰 고통이었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 고통 가운데서 우리 주님께서는 죽는 것이 너무나도 무섭고 두려워서 온몸으로 항거하다가 고통 가운데 정말 절망 가운데 마지막 순간을 보낸 것이 아니라, 그 힘들고 어려운 고통의 상황 가운데서도 이것은 죽음이 아니라, 우리가 자고 난 다음에 다시 일어나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손에 자신의 영혼을 맡기면서 주님 앞에 운명할 수 있었다고 하는 것을 오늘 볼 수가 있겠습니다.

특별히 십자가 위에서의 고통은 정말 힘들고 어려운 것이었는데요. 육체적인 고통은 더 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더 힘들고 어려웠던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과 같은 아픔입니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시고, 나를 버리신 것만 같고 내가 울부짖어도 전혀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는 그렇게 외면당하는 그런 아픔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서 불안해하고 공포스럽게, 그래서 마지막을 죽으신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며, 마지막 숨을 거두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고통이 주어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이라고 할지라도, 누구를 신뢰해야 되는가? 이 세상에 그 어느 것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뢰할 분은 오로지 아버지 하나님 한 분밖에 없기에, 마지막 그 순간에 하나님께 영혼을 맡기는 기도를 하게 된 줄로 믿습니다. 이 기도를 통해서 우리 주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있었다고 하는 사실을 알 수 있겠는데요. 내 영혼을 하나님께 맡긴다고 하는 것은 전적인 신뢰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일 어떤 은행에 돈을 맡긴다고 한다면, 그 은행이 내가 그 돈을 맡긴 상태 가운데서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다가 어느 날 내가 필요해서 돈을 달라고 하면, 그 돈을 내어줄 거라고 하는 신뢰가 있기 때문에 맡기는 겁니다. 그런데 종종 어느 저축은행에게 저축은행에 예금을 맡겼는데 갑자기 영업정지가 들어가고 그래서 그 돈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하는 그런 뉴스를 종종 듣게 됩니다. 그러면 불안해서 우리가 그것을 맡겨놓을 수가 없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 하나님께 맡긴다고 하는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에 가장 믿을 수 없는 순간을 경험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 순간에 그 누구를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아버지 하나님을 믿는 것밖에는 소망이 없고, 오로지 아버지 하나님만을 믿는다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지금은 외면하시는 것 같고, 지금은 예수님의 그 울부짖음에 전혀 대답해 주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사랑하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시며, 변덕스러운 하나님이 아니라, 공의의 하나님이시고,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온전히 신뢰하며, 자신의 영혼을 맡기신 것입니다.

이 세상이 완전히 무너져 버리고, 그리고 천지가 개벽한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분은 누구십니까? 예수님이죠. 아주 전쟁이 나고, 여러 가지 힘든 일이 있게 되면, 사람들은 화폐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금덩어리를 삽니다. 화폐라고 하는 것은 가치가 떨어져버릴 수도 있는 것이죠. 지금 러시아에서는 화폐의 가치가 많이 떨어져서 지금 엄청나게 힘든 상황들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세계가 이렇게 경제 제재를 가하게 되니까, 갑자기 러시아의 루블화 가치가 떨어져버려서, 완전히 그 돈으로 무엇을 살 수 없는 그런 상황까지 나라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고요. 만약에 어떤 정부가 잘못해서 어떤 한 나라의 경제가 완전히 무너지게 되면, 전에는 그 돈을 가지고 많은 것을 살 수 있었지만, 그 지폐들이 다 휴지조각이 되어 버리는 일들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그런 전쟁의 상황 가운데서는 화폐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 금을 사서 모으고, 그것에 우리가 신뢰하면서 하는 것처럼, 그렇게 되는 것인데, 금보다도 더 확실한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분이 누구신가? 우리 아버지 하나님 한 분밖에 없는 줄로 믿습니다.

시편 46편 1절에서부터 3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란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치므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셨습니다. 신뢰하셨기 때문에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이고요. 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아버지 하나님의 손에 맡기시며 운명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하는 점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사실을 믿을 수만 있다고 한다면, 그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할 수 있겠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선조들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했는데요. 그렇게 놀라운 믿음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바치라고 그렇게 요구하셨을 때, 그 명령을 들었을 때 아브라함은 순종하며 나아갑니다. 그렇게 아들을 내어놓으라고 하는 그 하나님의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요구를 순종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뢰 때문인 것이죠. 지금까지 살고 경험하면서,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인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고,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이고, 나를 망하게 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결국 모든 것을 인도하여 선하시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을 때, 우리의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아들을 죽이라고 하는 그 명령을 내 말로는 내 마음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나쁜 하나님이 아니라, 선하신 하나님이고,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결국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아들을 죽이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결국에는 나에게 돌려주실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게 될 때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7절에서부터 19절의 말씀 가운데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을 받은 자로 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데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아들을 죽인다고, 죽이라고 할지라도, 그 말씀 앞에서도 담대하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아들을 바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이제는 하나님께서 “네 아들을 나에게 바쳐라”가 아니라 “네 목숨을 내놓아라”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실 때, 그 순간에 하나님을 거부하고 거역하면서 도망간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신뢰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지금 당장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 것 같고, 내 아픔에 울부짖음 가운데 그 귀를 닫아버리신 것 같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철저하게 신뢰할 수 있는 분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께 바치나이다.” 하면서,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이 세상에서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가운데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 아버지께 맡길 수 있는 그런 믿음의 결단들이 있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로마서 8장 38절에서부터 39절의 말씀에 보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기쁨이나 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파워가 무엇일까요? 사탄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파워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죽음인 것이죠.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이 올스톱 되고, 죽음 앞에서 모든 계획이 완전히 무너져 버리고, 죽음 앞에서 모든 것들이 다 포기될 수밖에 없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죽음일 수밖에 없는데, 그 죽음이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부터 끊어놓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 설사 죽음이 우리에게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고 하는 확신을 가진 가운데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맡길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 우리들이 처해 있는 상황이 무엇입니까? 때로는 우리가 십자가 위에서 못 박히신 우리 주님께서 울부짖을 때, 하나님께서 전혀 응답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상황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응답해 주시겠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귀를 닫아버린 것만 같아요.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 것 같아요. 하나님이 전혀 계시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상황을 우리가 만나게 된다고 할지라도, 그러나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통일하시며, 여전히 우리를 사실 사랑하시는 분이기에, 우리가 믿고 의지할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을 담대하게 믿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것들은 우리들을 향해서 온갖 좋은 약속들을 내놓습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다가와서 귓속말로 속삭이기를, “나에게 경배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내게 주겠다”고 약속하고 있고, 만일 뛰어내린다고 한다면 살릴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고, 온갖 감언이설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우리들을 향해서 응답해 주는 것처럼, 그래서 우리만 믿으면 재물만 믿고 권력만 믿고 사탄만 의지하면, 이 세상의 방법만 따라가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그런 온갖 유혹이 우리들에게 다가오고 있는데, 그러한 것을 따라가면 될 것만 같고, 성공할 것만 같지만, 사실은 그 길은 망하는 길이고, 하나님께서는 전혀 응답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우리의 울부짖음에,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고,내 기도에 응답지 아니 하시나이까?” 그런 상황이 닥친다고 할지라도,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지할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시기에, 나의 영혼을 맡길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을 믿고 맡기신 것처럼, 오늘 하루하루 살아가는 동안에 주님을 맡기고 믿고 신뢰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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