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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게 아니다

어떤 한 사람이 행한 일은 그 일을 행한 바로 그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사실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다. 브라질에 있는 나비가 날개를 한번 퍼덕인 것이 대기에 영향을 주고, 그러한 영향이 또 다른 것에 영향을 주어, 결국에는 다른 지역의 토네이도를 지연시키거나 경로를 변경시킬 수 있다고 한다. 한 사람의 행동이나 말이 그 사람에게만 미치는 게 아니고,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한 사람 대통령이나 왕이 행한 결정은 모든 백성에게 영향을 미치고, 한 사람 가장이 내렸던 결정이 가족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며, 한 회사의 대표가 내린 결정이 회사 구성원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했다는 성경의 가르침은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로마서 5:12은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고, 결국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불신자들은 이러한 원죄의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원조의 교리는 하나님의 공평하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분인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저지르지도 않은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면, 정말 억울할 것이기 때문이다. 원죄의 교리를 말하면 사람들이 반발하는 이유는 그렇게 공정하지 못하고 공평하지도 못한 분이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아주 큰 오해이다. 이 세상에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 가서 억울하다고 항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비교적 다른 사람들보다는 더 착할 수 있고, 더 의로울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벽한 삶을 살 수는 없다. 하나님 앞에 서는 그 순간 우리가 지은 죄가 너무나도 크고 중하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나는 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억울하게 아담이 지은 죄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된다도 항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우리에겐 메시야가 필요하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스스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을만큼 영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담의 범죄 이래로 모든 사람이 다 심각한 죄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우리를 건질 수 있는 것은 없다. 돈도, 명예도, 정치인도, 권력도 그 무엇도 우리를 살릴 수 있는 것은 없다. 예수님만이 진정으로 우리의 구주가 되신다. 그 한 분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이 우리를 죽음의 형벌 가운데서 건져내신 것이다.

연관 설교: http://www.jjvision.org/?p=15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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