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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 십자군의 길

가룟 유다는 군병들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을 체포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제사장들은 민란을 일으키지 않고 예수님을 없앨 방법을 모색했는데, 가룟 유다를 매수하여 예수님을 한밤중에 체포하기로 한 것이었다. 남들이 피곤해서 다 잠에 골아떨어졌을 바로 그 시간에, 예수님을 잡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 모여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악을 행하는 데에는 참으로 열심이 많고 지치지 않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그런데 선을 행하는 일에는 너무나도 쉽게 포기한다. 악을 행할 때에는 자기 돈을 써가면서 열정적으로 나서며, 전혀 포기할 줄을 모르는데, 선한 일을 하다가는 조금만 어려움이 생겨도 포기해버리는 게 우리들의 모습이다.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악한 일에는 멈추게 하시고, 선한 일을 할 때에는 지치지 않게 해 주옵소서.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않게 하옵소서 기도해야 한다.

군병들이 예수님을 체포하려는 순간 칼을 빼어들어 예수님을 보호하려는 사람이 있었다. 요 18:10에서는 그가 베드로였다고 기록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것까지 참으라“고 하셨다. 우리는 내가 옳고 정의에 편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폭력적이 되기 쉽다. 우리는 성격이 나빠서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화를 낸다. 그래서 갑질을 하게 된다. 베드로가 칼을 휘두른 이유는 자신이 주님의 편에 서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순간에 악에 맞서서 싸워야만 선이 이길 수 있고, 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악과 싸워서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것까지 참으라고 하셨다. 성경은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하였다(약 1:20).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순간에 악과 맞서 싸우지 않는다면, 그냥 당해야 할까? 우리는 이런 순간에도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믿어야 하고, 그 하나님께서 결국 반드시 모든 것을 바로 잡으실 것임을 믿어야 한다. 그게 믿음이다. 그리고 원수를 사랑해야 한다.

영적인 싸움이란 외부의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 역사를 통해 영적인 싸움을 외부의 기독교에 적대적인 세력과의 싸움으로 오해해왔다. 그래서 이단을 찾아 화형시키기도 하고, 십자군 전쟁을 통해 이슬람교도들을 물리쳐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공산당, 동성애자, 기독교를 박해하는 정권들을 물리쳐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이 영적인 싸움이 아니다. (오해하지 말라. 그런 세력들이 옳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영적인 싸움은 나로 하여금 분노하게 만들고 폭력을 사용하도록 조장하는 영적인 유혹과의 싸움이다. 베드로는 그런 싸움에서 졌다. 화평하게 하는 자가 복이 있는 것인데,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악한 세력과 싸워서 이기는 것이 옳다고 착각한 것이다. 그런데 어둠이 어둠을 물리칠 수 없다. 오직 빛만이 어둠을 물리칠 수 있다. 미움으로 미움을 물리칠 수 없다. 오직 사랑만이 미움을 물리칠 수 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말한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십자군의 길이 아닌,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한다. 그게 주님이 가신 길이고, 우리가 따라가야 할 길이다.

연관설교: http://www.jjvision.org/?p=6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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