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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을 보았다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비판하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우리가 남을 비판하면 남을 비판한 그대로 우리가 비판을 당할 것이고, 우리가 남을 헤아린 그 헤아림 그대로 헤아림을 당할 것이라고 교훈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늘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비판하는 일을 중단하지 않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남을 비판하면 자신은 그 비판으로부터 면제될 것이라는 착각 때문이기도 하다. 남을 비판하기만 해도 인기를 끌고 지지도가 올라가는 게 이 세상이 아니던가? 그래서 남을 비판하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렇게 하면 나는 그런대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겨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감추어진 모든 것은 다 드러나게 되어 있다고 하신다. 어두운 방 안에 등불을 들고 들어가서 비추면, 어두웠을 때에는 보이지 않앗던 것들도 볼 수 있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불꽃같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우리가 꼭꼭 감추어두었던 모든 것들이 다 드러난다. 이 세상에 그 어느 것도 영원히 감추어질 것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돌아보아야 할 뿐만 아니라, 섣불리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일에 앞장 설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는 비판을 하지 말라고 권고하시는데, 그렇다면 우리 가운데 불법의 문제나 악의 문제가 있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최선일까? 문제를 끄집어내고 분란을 일으키는 것보다 쉬쉬하면서 덮어두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란 말일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성경을 한 부분만 읽고 오해한 것이다. 성경에는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도 있지만, 갈라디아서 6:1은 그런 경우에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냥 모른척 할 게 아니라,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것이 옳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가정이나 교회나 사회가 잘못된 길로 간다면, 바로 잡기 위해서 노력하는 게 옳다. 그래서 마틴 루터는 중세 교회가 교황을 비롯하여 모두가 잘못된 길로 갈 때, 그냥 가만히 있지 않았다. 95개조의 반박문을 붙이며 교회 개혁의 불씨를 지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비판하지 말라. 바로 잡아라. 두 가지 명령 가운데 무엇을 따라야 할까? 비판과 바로잡음을 나누는 중요한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마음에 있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그저 잘못을 비난하여 파멸로 이끄는 것은 악한 일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으로 잘못을 바로 잡아서 바르게 세우려고 하는 것은 선한 일이다. 바리새인들은 세리와 죄인들을 보면서 무시하고 경멸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하지만 선지자들은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해서 눈물로 호소하고 애곡하였다.

더 나아가 지혜로운 표현을 해야 한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해서 모든 행위가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랑하는 마음을 지혜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나는 의롭고, 상대방은 악하다는 입장이 아니라, 나도 똑같이 죄에 빠질 수 있음을 인식하고 겸손하게 접근해야 한다. 갈라디아서 6:1의 말씀처럼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늘 실수하고 넘어진다. 그럴 때 방관만 할 것도 아니고, 비난하고 욕하기만 할 것도 아니다. 어떻게 하면 회복시키고 바른 길로 돌아오게 할 것인지 기도하면서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연관 설교: http://www.jjvision.org/?p=15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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