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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이 가난하다는 의미는?

가난하다는 것은 돈이 없다는 것, 충분한 재정적 능력이 없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면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은 무엇일까? 심령이라고 번역된 사용된 헬라어 단어는 프뉴마인데,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으로 예배해야 한다고 했을 때, 사용된 말이다. 도대체 영이 가난하다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

우선 이 말은 물질적으로 가난하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기독교 역사에서 자주 가난이야말로 크리스천들이 가져야 할 덕목이라고 강조되곤 했었다. 특히 수도원 운동에서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 세상의 모든 물질적인 욕심을 내어버리고 결혼도 하지 않으면서 오직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에 전념하면서 침묵의 훈련을 하는 것이 가장 고상한 영적인 삶이라고 생각하곤 했었다.

물질적으로 가난해야 된다는 생각은 예수님께서 젊은 관원에게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던 것에서 지지를 받는다. 그 청년이 가고 난 뒤에 예수님은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하셨다. 그래서 이 말씀만 보면, 정말 우리는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가난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물질적으로 가난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성경적인 관점은 아니다. 성경에서 가난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지만,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택배 노동자들의 짐을 대신 져주시겠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영적인 짐을 진 사람들에 대한 초청이었고, 죄의 짐을 진 사람들을 구원하신다는 의미였을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목마른 자들아 오라 돈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음료수를 제공하시겠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영적인 배고픔과 영적인 갈급함을 뜻한 것이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나 자신에게 아무런 능력이 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주님께 도움을 바라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그 어떤 것에 의존할 것이 없기에 오로지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사람은 주님께 나아올 것이다. 주님만이 유일한 소망이 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이 바로 영적으로 가난한 자이다. 어린아이는 자신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배고프면 울고, 대소변을 치워달라고 우는 것이다. 그런 우는 자에게 어머니가 사랑을 베풀 듯,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

안타깝게도 바리새인들은 심령이 가난하지 않았다. 그들은 교만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러 나갔지만, 하나님의 긍휼하심 앞에 서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주변 사람들에 대한 멸시와 자기 자랑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했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이게 우리가 쉽게 빠지는 함정이다. 교만은 신앙생활의 가장 치명적인 독이다. 우리 자신이 철저하게 파산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하심을 바라는 자가 복이 있다.

연관 설교: 심령이 가난한 자 (마 5:1-12) – 팔복강해 1 – 전주 예수비전교회 (jjvisi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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