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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이라는 거울

우리는 율법의 굴레로부터 해방되었다. 이러한 선언은 마치 율법이란 악한 것이며, 나쁜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우리가 일제의 압제로부터 해방되어서 이제는 더 이상 일본어를 사용하거나 일본식 이름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듯이, 율법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은 율법이란 일본처럼 떨쳐버려야 할 것이란 인상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율법이 나쁜 것인가라고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에 대하여 바울 사도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율법이 나쁜 게 아니라, 우리들에게 유익하다. 율법은 우리가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율법을 모른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 길이 없다. 따라서 율법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율법에서부터 우리가 해방되어 더 이상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 율법이 악한 것이 아니라 유익한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 있다. 이러한 혼란은 율법이란 용어가 다양하게 사용되기 때문이다. 율법으로부터 우리가 해방되어서 더 이상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할 때에는 의에 이루는 수단으로서의 율법을 의미하기도 하고, 의식법으로서의 율법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전히 율법이 우리들에게 유익하다고 할 때에는 도덕법으로서의 율법을 의미한다.

도덕법으로서의 율법은 여전히 우리들에게 유효하며 유익하다. 이것이 있기에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마치 거울과 같다. 우리는 거울을 왜 보는가? 내 모습이 잘 되어 있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거울에 보이는 나의 모습이 더럽다면, 거울의 잘못일까? 그렇지 않다. 로마서 7:8-11의 표현을 보면 마치 율법이 우리를 죄인으로 만들어버 린다는 식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사실은 그 표현은 물주구문식 표현으로 율법이란 거울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영적인 모습이 더럽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의미일 뿐이다.

율법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기준에서 멀리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면, 우리는 열심히 성경이란 거울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래야 영적인 모습을 단정하게 가꿀 수 있다. 그 영적인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이 더럽다면, 어서 빨리 회개하고 우리의 모습을 고쳐야 한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그런 용도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저 몇 번 읽었는지, 썼는지, 얼마나 암송했는지 등등 종교적 성취의 도구로 사용할 뿐이다. 그건 성경을 제대로 읽은 게 아니다, 성경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아야 하고, 그래서 우리를 고쳐 나가야 한다. 변화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연관 설교: http://www.jjvision.org/?p=16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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