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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은 찬양으로 완성된다

사물의 용도를 제대로 알아야 사물을 제대로 잘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원래의 목적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어떤가? 사용하는 사람이 창의적으로 자신에 맞게 사용해서 유용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사물의 경우야 그렇다. 하지만 만일 어떤 사장님이 직원을 채용하였는데, 그 직원이 채용된 목적에 따라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최근 SNS 상에는 황당한 알바의 이야기가 올라와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음식점에서 알바를 채용했는데, 그 알바가 음식주문을 취소해버린 것이다. 주문이 많으면 일하는 게 힘들어서 취소시킨 것인데, 그 사장님은 참으로 황당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창조하신 것도 목적이 있다. 이사야 43:21에서는 바로 그 목적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산다면,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따라 사는 것이 될 것이다. 반대로 그런 목적과는 다른 삶을 산다면, 창조 목적에 위배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에 사람들은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예란 말인가? 영혼이 없이 찬양을 해야 살아남는 북한의 기쁨조와 같은 것이란 말인가? 이러한 질문을 던지곤 한다. 하지만 억지로 하는 것은 찬양일 수 없다. 마음속에서부터 기쁨과 감격이 있어서 그 마음속으로부터 나오는 찬양이어야 진정한 찬양이다.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면, 그냥 조용히 먹을 수 없다. 맛있다고 감탄하면서 먹게 되고, 맛 있었다고 떠벌리게 된다. SNS에 올리기도 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게 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의 기쁨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참된 기쁨이 있다면, 우리는 조용히 있을 수 없다. 밖으로 표출되게 되어 있다. 기쁨을 표출할 수 없다면, 그것처럼 고통스러운 일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로 만드셨다는 것은 북한의 기쁨조와 같이 만들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이 말씀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풍성하게 쏟아부어 주셔서, 우리들의 마음속에서부터 기쁨과 찬양이 저절로 나오게 만드시겠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천국에 가면 주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지겨운 일이 아니다. 매일 매일이 날마도 새롭고 놀라운 일들이 계속되기 때문에 감탄과 찬양이 계속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망각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어서 찬양을 못하는 게 아니라, 망각하기 때문에 찬양하지 못하고 불평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과 은총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의 선하심을 우리들의 삶 속에서 맛보아 알아가야 한다. 우리가 그 맛을 모르는 것은 우리가 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억지로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벌을 내리는 군대의 조교와 같은 분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들에게 사랑을 풍성하게 베푸셔서 감탄과 찬양이 나오게 하시는 분이시다.

연관설교: http://www.jjvision.org/?p=17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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