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닫기

억지로가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면서, 예전에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구제헌금에 참여하겠다고 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나중에 바울 사도가 그 구제헌금을 받으러 갈 때, 그때에서야 허둥거리며 구제헌금을 거두지 말고 미리 준비하여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러면서 고린도교회가 구제헌금에 동참하겠다고 했을 때, 마게도냐 교회도 감동을 받아 구제헌금에 동참하겠다는 반응을 불러 일으킨 것을 언급하였다. 그런데 정작 고린도교회가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안 될 것이라 하면서 권면한 것이다.

바울 사도가 이렇게 고린도 교회를 향해 권면하고 헌금을 독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들은 뜨거운 마음과 열정이 있지만, 그 열정을 실제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데에는 너무 느리기 때문이다.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데 있지 않다. 너무나도 잘 안다. 하지만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에는 너무 느리다. 마음만 있을 뿐, 여러 가지 상황에 밀려 그 기쁘신 뜻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영적인 게으름은 단순한 게으름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은 심각한 영적인 질병이다. 아무리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감동을 받아도, 실제적으로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다면 아무런 영적인 유익이 없다. C.S. 루이스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라는 책에서 쓴 13번째의 편지에 이 점을 아주 통렬하게 지적한 바 있다.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그 어떤 깨달음이나 회개도 사탄의 입장에선 겁낼 게 없다고 한 바 있다.

바울 사도는 마게도냐 교회를 향해서는 고린도 교회의 예를 들면서 구제헌금에 동참하게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마게도냐 교회의 예를 들면서 고린도 교회로 하여금 마음에 정한 바를 실행에 옮기라고 촉구하였다. 이러한 행위는 이중 플레이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게 바울 사도의 마음이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원했던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두 교회 모두 이러한 선한 일에 동참하였다.

바울 사도가 이렇게 권면하고 독려하는 것은 고린도후서 9:7에서 말한 억지로 할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 원칙과 어긋나는 것일까? 종종 자발적이라는 말을 그렇게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는 말은 아무런 권면이나 독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자발적으로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도록 독려가 필요한 게 사람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나태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이러한 권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혼자서 잘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다면, 교회는 필요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혼자서는 안 된다. 나태하고 쓰러질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가 사랑으로 권면해야 한다. 그래야 함께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연관 설교: http://www.jjvision.org/?p=18188

Loading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