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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 십계명 강해 8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아주 명료해서 굳이 무슨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이런 명령을 하셨을까? 그것은 우리의 이웃을 적대시하지 말고 사랑하라는 의미에서이다.

우리의 이웃은 우리가 함께 협력하고 사랑하며 살아야 할 동반자들이다. 그런데 그런 이웃을 죽인다면 우리에게 아주 큰 비극일 것이다. 부모를 죽이면, 결국 내가 고아가 될 것이다. 배우자를 죽이면 내가 미망인이 될 것이다. 친구를 죽이면 내가 외톨이가 될 것이다. 결국 이웃을 죽이면 그만큼 내게 큰 비극이 된다. 가인은 아벨을 죽였다. 그 결과 그는 자신을 보호하고 도와줄 사람이 없이 죽임을 당할까봐 두려워하며 인생을 살아야 했다. 살인하지 말라는 것은 그저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미워하지 않아야 하고 욕하지 않아야 하고, 사랑하며 살아야 그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사는 것이 된다.

사형제도는 우리가 반대해야 하는가? 종종 구약에 사형제도가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크리스천들이 있다. 하지만 단순히 구약에 제도가 있었다는 사실만 가지고 어떤 제도를 옹호하는 것은 어설픈 논리이다. 구약에는 형사취수제도도 있었고, 노예제도도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런 방법을 우리가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국가가 사형제도를 통해서 범죄자를 사형시킨다면 그것은 제6계명과는 별개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형집행은 신중해야 할 것이고, 더 나아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폐지 쪽으로 가는 것이 제6계명의 정신에 맞을 것이다.

집총을 거부해야 하는가? 국가를 위해서 전쟁을 하는 것은 필요악이다. 그렇지 않으면 더 큰 희생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제6계명과는 무관한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신앙적인 이유로 집총을 거부하는 것도 비방할 것은 아니며, 그 마음을 존중할 필요는 있다. 더 나아가 국가의 부름을 받아 집총을 하게 된다 하더라도 국가에 의해 악용되지 않는 선에서 집총을 하는 것이 옳다.

낙태는 어떠한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라 할지라도 생명이기에 낙태하지 않는 것이 성경적이다. 물론 기독교 윤리학자들은 피치 못하게 낙태해야만 하는 아주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논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원론적으로 낙태는 살인의 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자살은 어떠한가? 자살도 자신을 살인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제6계명을 범하는 일이 될 것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자살을 하면 무조건 지옥에 간다고 말할 수는 없다. 구원은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이기 때문이며, 자살을 시도한다 해도 회개할 기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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