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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십계명 강해

탐욕 – 십계명 강해 12

제10계명은 탐욕을 금하고 있다. 제8계명에서 도둑질을 금하고 있는데, 실제적으로 남의 것을 부당한 방법으로 가져가는 차원을 넘어서서 마음 속으로 욕심을 부리는 것 자체를 금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욕구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일부 종교에서는 욕구 자체를 악한 것으로 보고 욕구를 제어하는 것을 종교적인 목적으로 삼고 있지만, 사실 욕구는 인간이라면 자연스레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생리적인 욕구, 안전 욕구, 소속의 욕구, 애정의 욕구, 존경받고자 하는 욕구, 자아실현을 하고자 하는 욕구 등등 인간은 낮은 단계의 욕구가 충족되면 더 높은 단계의 욕구를 향해 나아가게 되어 있다.

성경에서 금하고 있는 것은 남의 것을 부당하게 욕심을 부리는 것이다. 다윗이 남의 아내를 탐냈던 것처럼, 아합 왕이 나봇의 포도원을 탐냈던 것처럼, 그리고 광야의 백성들이 만나를 거두면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 외에 더 많은 것을 탐냈던 것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이다.

왜 우리는 탐심을 부리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으로 우리가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것으로 채우려고 하면 허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자꾸만 탐심을 부리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자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욥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을 다 잃었을 때에도 낙망하지 않았었다. 그는 하나님으로 만족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탐욕을 부리지 말라고 말씀하시는가? 그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탐심은 우리를 갉아먹을 것이다. 우리를 파멸시킬 것이다. 그래서 탐심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늘 이 부분에서 실패한다. 그래서 십자가 앞에 늘 나아가야 한다.

거짓말 – 십계명 강해 11

제9계명은 거짓 증거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 옛날 증인들의 증언에 의존해서 재판을 하던 과거의 시스템 속에서 이해하기 쉬운 말이다. 만일 증언하는 자가 거짓 증언을 하여서 잘못된 재판의 결과를 가져온다면, 그것처럼 억울한 일은 없을 것이며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거짓 증거를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계명은 단순히 거짓 증거를 하지 말라는 것을 넘어서서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결국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정의롭게 만드실 것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거짓말로 진리를 세울 수 없고, 정의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고, 거짓말의 결과는 다른 사람들에게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 비참할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거짓말 중에는 괜찮은 거짓말도 있을까? 십브라와 부아는 애굽 왕 바로에게 거짓말로 보고하고 이스라엘의 아기들을 죽이지 않았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책망하였다는 기록이 없고 오히려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출 1:21).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을 살리기 위해 거짓말을 했던 라합의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와 마틴 루터는 거짓말에는 해가 되는 거짓말이 있는가 하면, 도움이 되는 거짓말도 있고 악의가 없는 유쾌한 거짓말도 있다고 한 바 있다. 하지만 어거스틴은 모든 거짓말은 다 악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 문제는 쉽게 답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때 그때마다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지 하나님 앞에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만일 토마스 아퀴나스와 마틴 루터의 생각처럼 괜찮은 거짓말도 있다고 생각해서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우리는 쉽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할 것이다. 반면 만일 어거스틴처럼 거짓말은 그 어떤 것도 용납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진실만을 말한다고 하다가, 주변의 사람들에게 오히려 더 큰 피해를 입히고 상처를 주는 일들이 생길 수 있다. “나는 거짓말을 못 한다”고 하면서, 주변의 사람들에게 사랑이 없는 비난의 말들을 해대는 것은 옳은 것이 결코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민하면서 기도하면서 결정해야 한다. 사실 이 계명은 진실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항상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나는 진실한가?

도둑질 – 십계명 강해 10

도둑질이 나쁜 일이라는 것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누구나 다 달 알고 있다. 이는 사람에게 양심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양심에 도덕법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은 진화론으로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오직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로만 설명이 가능하다.

우리들의 양심에 하나님의 계명들이 새겨져 있지만 사람들은 그 계명들을 허물어버리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간음하지 말라는 법이 새겨져 있는데, 간통은 죄가 아니라고 하거나 동성애는 죄가 아니라고 하는 등 자꾸만 도덕법을 허물어버리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도둑질하지 말라는 법은 오히려 더 강화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그래서 요즘에는 지적 재산권에 대한 개념도 나오는 등, 유독 도둑질하지 말라는 법만 강화되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탐욕적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기보다 자신의 것을 보호하고 혼자만 잘 살려는 탐욕이 반영된 결과처럼 보인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이러한 발전에 따라 다른 사람들의 재산권을 보호해주어야 할 것이지만, 동시에 이 법을 마치 탐욕을 보장해주는 법으로 생각해서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지 않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도둑질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재물을 우상으로 섬기고 사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둑질하는 행위는 물질을 단순히 유용한 수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상으로 생각하게 될 때 나오게 된다. 물질이 악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우상으로 섬기게 될 때 문제가 된다.

도둑질을 금하시는 이유는 도둑질은 우리들에게서 감사를 앗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재물의 노예를 만들어 기쁨도 앗아가 버리게 된다. 도둑질은 우리들의 실생활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나타날 수 있다. 내게 속하지 않은 것을 부당한 방법으로 취득하는 모든 것이 다 죄가 된다. 우리들은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러한 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이 필요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한다.

간음 – 십계명 강해 9

간음하지 말라는 제7계명을 살펴볼 때 먼저 기억할 것이 있다면 성(性)은 더럽고 추악하기 때문에 우리가 멀리해야 할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축복이라는 사실이다.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라하고 사명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영적이고 종교적인 일은 거룩한 것이지만, 육적인 것은 더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성속 이원론, 혹은 영육 이원론에 끌릴 때가 많다. 하지만 성경적인 관점은 그렇지 않다. 성경은 독신주의를 고상한 것으로 권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셨다.

제7계명에서 금하고 있는 것은 성적인 관계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하나님께서 정하신 범주 밖에서 사용하는 것이다. 합법적인 부부의 관계 밖에서 사용한다면 그것은 간음의 죄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간음을 금하고 있는 이유는 간음은 우리를 파괴할 것이기 때문이다. 쾌락을 우상으로 삼게 되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파괴하고 고통스럽게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픔을 주고 관계가 깨어지게 만들며, 사람을 수단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간음의 죄는 중죄에 해당한다. 물론 모든 죄가 하나님 앞에서 다 심각한 죄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죄는 경고만 해도 될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떤 죄는 심각하게 다루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간음은 후자에 해당한다. 그래서 교회 내에서 간음의 죄가 있다면 유야무야하고 지나갈 것이 아니다. 영적인 지도자가 간음의 죄를 지었다면 사역을 내려 놓아야 한다.

더 나아가 실제로 간음하지 않았더라도 마음으로 음욕을 품는 것도 죄라고 하셨다. 물론 음욕이 솟는 것 자체를 막을 방법은 없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계속 품는 것은 잘못이다. 마틴 루터가 말한 것처럼, 새가 우리들의 머리 위로 지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둥지를 틀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간음의 죄를 피하기 위하여서는 건전한 부부관계를 회복시키고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배우자로부터 받은 상처들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면 내가 마치 광야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럴 때 유혹에 취약해진다. 우리는 닫았던 마음을 열고 사랑의 물을 뿌려서 광야를 옥토로 바꾸어야 한다.

사실 그렇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남편이신데 신부된 우리는 호세아의 아내 고멜처럼 우상들을 남편으로 삼아버렸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지 않으셨다. 오히려 우리를 향해서 사랑을 쏟아부으셨다. 심지어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면서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