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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질 – 십계명 강해 10

오늘은 십계명 강좌, 제8계명 “도둑질하지 말라”라고 하는 말씀으로, 함께 오늘 이 저녁 시간을 같이 나누려고 합니다. 도둑질이라고 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죠. 나쁜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도둑질이라고 하는 것은 나쁘다고 하는 것을, 사람들이 그 마음 가운데 이미 알고 있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도둑질이라고 하는 것은 나쁜 거라고 알려주면, 그때서야 겨우 “도둑질이 나쁜 것이구나”라고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니고요.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서 도둑질이 나쁘다고 가르쳐주어야만, 그때서야 비로소 도둑질이 나쁘다고 하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가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도둑질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하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의 양심 속에 이 도둑질이 안 좋다고 하는 것, 좋지 못하다고 하는 것이 이미 새겨져 있는 것인데요. 이것은 사람이 진화해서 탄생한 존재가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 가운데 하나입니다. 진화론자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뻥 하고 폭발이 일어나서, 우주가 만들어지게 됐고, 그 우주가 만들어지는 가운데, 지구가 만들어졌고, 또 지구에 있는 그 여러 가지 무생물들이 시간이 많이 지나다 보니까, 천년, 2천 년이 아니고, 몇 억 년이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무생물들이 어떻게 어떻게 결합하다 보니까, 아미노산이 만들어지고, 단백질이 만들어지고, 그래서 생명체가 탄생하게 되고, 가장 단순한 생명체 세포에서부터, 아메바라고 하는 것에서부터 생명이 시작됐는데, 그것이 또 진화하고 또 진화하고 또 진화해서, 그래서 결국에는 이런 포유류도 생기게 됐고, 마지막에는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그렇게 진화론자들이 설명을 합니다.


만일 인간이 어쩌다 보니까 우연히 진화해서 무생물로부터 생물이 만들어지게 되고, 그래서 인간이 되었다고 한다면, 그 인간의 마음속에 태생적으로 들어있는 이 윤리적인 의식, 하나님에 대한 인식, 이러한 것들이 “어떻게 무에서부터 생겨날 수 있겠는가?”라고 하는 것을 도무지 설명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심령 가운데 선과 악에 대한 개념이 있고,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있고, 그리고 무엇이 나쁜 것인가, 무엇이 좋은 것인가에 대한 개념들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그 마음속에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류를 만드실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셔서, 그래서 하나님의 모습으로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우리들의 심령 가운데, 양심의 법에 무엇이 옳고 무엇이 잘못이라고 하는 것이 태생적으로부터 생겨났다고 보는 것이 훨씬 더 옳을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양심은 너무나도 타락해져 버려서, 사람들의 양심 가운데 하나님의 법을 증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들이 저지르는 그 죄가 너무나도 무섭기 때문에, 그 자신들이 행한 것들이 죄가 아니라고 하기 위해서, 자꾸만 양심을 억압하고 “이건 죄가 아니다” “이것은 괜찮은 거야”라고 억압하는 그런 성향들이 우리 사람들에게 있는데요. 그래서 자꾸만 양심의 소리를 억압하고, 양심의 소리를 부정하면서, 그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려고 하는 경향이 우리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존재, 하나님 존재에 대한 그 감각도 사람들마다 양심에 새겨져 있지만, “하나님은 없는 거야” “하나님은 없어”라고 자꾸만 자꾸만 부정하고 또 부정해야만, 내가 마음이 편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있다고 한다면 언젠가는 내가 심판을 받을 수가 있겠고, 내가 저지른 죄에 대한 그런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꾸만 “하나님은 없는 거야”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만들어낸 상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자꾸만 억압하고 그것을 누르려고 하는 경향이 우리 인간들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계명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그런 증거뿐만이 아니라, 양심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여러 가지 윤리와 도덕적인 면에 있어서도, 이것은 죄가 아니라고 자꾸만 부인하려는 경향이 우리 인생들에게 있죠. 예를 들어서 성적인 타락 같은 경우 지난 시간에 우리가 간음의 죄에 대해서 살펴보게 되었는데, 아주 오래전부터 간음의 죄에 대해서는 아주 심각하게 생각해 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마는,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그 간음의 죄에 대해서 너그러워지는 경향으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간통이라고 하는 것이 죄라고 모두가 다 알고 있었고, 그래서 처벌을 해야만 한다고 그렇게 생각을 하다가, 이제는 그 간통은 그것은 처벌할 죄는 아니라고 그렇게 느슨해지는 것이죠. 우리들의 심령 가운데 양심에 새겨진 그 법이 있는데, 그 법을 누르면서 “간통은 죄가 아니다”라고 하는 식으로 그 법을 느슨하게 만드는 경향이 우리들에게 있고요.

동성애 같은 것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예전에는 그 동성애 그러면 아주 악한 것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이제는 “동성애는 죄가 아니다”라고 하는 그런 쪽으로 사람들이 허용하는 쪽으로 자꾸만 법을 허물고, 허용하는 쪽으로 느슨하게 만들어가는 경향이 우리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명이 우리들의 심령 가운데 새겨져 있지만, 그것을 자꾸만 완화하고 완화해서 자꾸만 무너뜨리려고 하는 경향이 우리들의 오늘날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경향에 비해서 정반대로 가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도둑질하지 말라”라고 하는 계명입니다. 다른 계명들은, “아니야, 그거 죄가 아니야” “서로 남자와 여자가 서로 좋아하면 됐지, 그게 무슨 죄야?” 하면서 자꾸만 무너뜨리려고 하는, 경계를 느슨하게 하려는 경향이 다른 계명에서는 나타나는 반면에, 놀랍게도 도둑질에 관한 계명만큼은 더 강화되고 확대되고 또 확대되는 그런 경향이 오늘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아주 오래전에는 전혀 죄가 안 되었던 것들이 이제는 도둑질이라고 하는 것으로 판명이 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지적재산권이라고 하는 그런 개념이 있는데요. 예전에는 누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그래서 그 음식을 맛있게 만들으면, 그 음식 만드는 법이 너무나도 좋다고 하면서, 너도 나도 같이 공유하고 사용하고 누구든지 다 쓸 수 있는 그런 사회가 예전에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누가 노래를 만들면 서로 좋아서 같이 노래를 하고 그 노래 좋다고 하면서 즐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근데 이제 시대가 바뀌었어요. 바뀌어서 이제는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어느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팔는데, 그 음식과 똑같은 음식을 그 옆에 식당이 만들어 팔게 되면, 그건 지적 재산권을 훔쳐간 것이 돼서, 도둑질이 되는 것이고, 결국 형사상의 그 고발과 그리고 민사상의 손해배상을 해야만 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표절도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예전에는 표절하는 것이 그렇게 문제가 안 됐습니다. 누가 한 말이 너무나도 좋고 멋있어서, 그 말을 그대로 내가 쓰면 되는 거예요. 아무 문제가 안 돼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성경만도 성경만 봐도 그렇습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살펴보면, 마태복음에 있는 내용이 마가복음에 있는 내용과 거의 똑같아요. 누가복음에 있는 내용과 거의 똑같아요. 글자 하나 철자 하나 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베껴 쓴 부분이 엄청나게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혀 문제가 안 되던 시대에 그것을 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가 마가복음서를 기록했으면, 그 마가복음서를 본 마태가 이 기록이 너무나도 좋고 잘 썼기 때문에 내가 복음서를 쓰면서, 그 마가복음에 썼던 내용을 그대로 갖다 써서 하나의 마태복음을 써서 보냈는데 아무 문제가 되지 않고 사용하던 시기가 옛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만일 어떤 사람이 글을 쓰거나 책을 쓰거나 논문을 쓰거나 할 때, 글자 몇 글자가 똑같아버리면 표절이 돼버리고 그래서 학위가 취소되고, 도둑질이라고 비난을 받게 되고, 정치인들은 그것으로 인해서 낙마하게 되는 그런 아주 도둑질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 강화되는 시기에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설교도 마찬가지 예전에는 설교할 때, 이 목사님이 하던 설교 그대로 베껴서, 저 목사님이 하고 그래도 그런가 보다 하고 은혜받는 시기가 예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떻게 되죠? 누가 누구의 설교를 베껴 쓴 것 같다, 그러면 큰일 납니다. 쫓겨납니다. 문제가 생기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고, 음악의 경우도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음악 가운데 몇 소절이 닮아버리면 엄청난 표절 소송에 휘말리게 되고 도둑질했다고 하는 그런 비난을 받게 되는 겁니다. 요즘에는 폰트가 뭘 잘못 쓰거나 그림을 잘못 그리거나 비슷하기만 하거나 해도 다 도둑질이라고 해서 문제 되는 시기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들이 다른 계명들은 다 느슨하게 괜찮아 이건 죄가 아니야, 이건 문제없는 거야 하면서, 모든 것들이 다 느슨하게 풀어지는 방향으로, 사회가 변화되는 이 상황 가운데서, 왜 이 도둑질에 대한 이 계명만큼은 옛날보다 더 강화되고 또 확대돼서, 모든 것들을 다 이렇게 모든 것이 다 도둑질이라고 판명되는 이렇게 강화하는 쪽으로 가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제 우리는 앞으로 아직은 그 단계까지 오지 않았지만, 우리가 예배 시간에 복음 성가를 부른다고 하면, 오늘 우리가 앞에 예배 전에 찬송 복음성가를 막 부르면서 찬양 인도를 했는데, 원저작자한테 로열티를 안 내고 함부로 불렀다고 소송이 들어올 그런 그럴 때가 곧 다가올지도 몰라요.


왜 이렇게 확대되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렇게 도둑질에 관해서 자꾸만 확대되는 경향은 사실 건전하거나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예전에는 네 땅이 없었고 내 땅이 없었습니다. 공유가 기본적인 개념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그냥 지나가다가 동네 나무에 열려 있는 감이고 대추고, 그냥 따먹어도 그게 문제가 됐나요? 안 됐어요. 심지어 설리를 해도 귀엽게 봐주는 그런 시대에 우리가 예전에 살았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추수할 때 다 거두지 말고 남겨두어서, 나그네들이 지나가다가 따먹고, 그것을 수확해서 먹을 수 있도록 놔두라고도 말씀해 주고 있는데, 오늘날 그 모든 것들이 다 도둑질이 되는 그 시기에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도둑질에 관해서만 법칙이 강화되어지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 인간의 탐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너무나도 탐욕적이어서, 그래서 자신의 것을 더 많이 얻고, 돈을 더 많이 벌겠다고 하는 그러한 욕심들이 강화되어서, 도둑질하지 말라고 하는 제8계명이 요즘 더 강화되고 강화되는 왜곡된 현상 가운데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로 향해서 나가는가? 우리가 더불어 함께 함께 행복하고 함께 나누며 즐기는 세상으로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인간의 탐욕을 극대화하고 또 극대화해서 그래서 자기가 가진 그 모든 것들을 최대한으로 강화시키고 확대시키려고 하는 그런 탐욕을 정당화하는 그런 시스템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 시대에 이런 상황 가운데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다른 방법이 없죠.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바뀐 그 시대의 법에 따라서, 이것저것을 모두 다 도둑질로 규정한 그 법을 잘 따르는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에는 이게 도둑질 아니었는데, 예전에는 다 허용됐었는데, 왜 이렇게 사람들이 너무나도 인색하고, 정말 이기적이고 탐욕적이어서, 다 자기 것만이라고 하고, 이것을 다 사용하는 것을 도둑질이라고 왜 규정하느냐고 따질 것이 아니라, 이제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지적 재산권을 보호해 주고 인정하며, 또 거기에 따라 맞추어서 살아야만 하는 시대에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예전에는 우리가 찬송가 부를 때, 성가대에서 복사해 가지고 다 썼는데, 요즘에는 복사해서 못 써요. 복사했다가 큰일 납니다. 다 책을 사가지고, 악보를 사서 찬양을 하게 되어 있는데, 이러한 바뀐 그 기준에 따라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따라야 할 규정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들은 그런 탐욕을 보장하는 방법으로서의 제8계명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면서, 나 자신의 탐욕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이 법을 사용하면 안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주셨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인가를 주셨다고 하면, 그것은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라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주셨다고 한다면, 그 무엇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하고 섬기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어서,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게 하기 위한 사명으로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믿는 것이 성경적인 관점입니다.

내가 모든 것을 다 움켜주고, 내가 모든 것을 다 차지하고 나서, 내 것을 뺏어가는, 뺏어간다고 하면, 그건 도둑질이라고 말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내 것을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도록, 그것을 방어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 아니라, 물론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거기에 맞춰서 그들의 것을 빼앗아 오지 않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이 세상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내가 모든 것을 다 차지해서, 나 혼자만 다 가지겠다고 하는 생각으로, 이런 제8계명 도둑질하지 말라고 하는 법, 오늘날 강화된 그 법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면서, 나의 탐욕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이 계명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도둑질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그 계명의 의미를 악용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그러한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다 움켜줌으로 말미암아, 정말 힘들고 어렵게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빵을 훔쳐야만 하는, 그런 장발장들이 나타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일이 우리 성도들이 해야 되는 일이고, 긍휼을 베풀며 사는 삶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법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도둑질하지 말라고 그 계명을 말씀해 주신 그 의도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 우리가 살아가면서 재물을 우상으로 삼지 말라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입니다. 재물이라고 하는 것이 참 좋아요. 나쁜 것이 아니에요. 너무나도 좋아서, 우리가 그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드는 느낌이, 이 재물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 재물이 좋은 정도가 아니라, 이 재물이 어느 순간에, 하나님이 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떡이 나를 먹여 살리는 것, 재물이 있어야 내가 먹고살 수 있고 재물이 있어야 내가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해서, 어느 순간에 재물이 나의 우상이 되어버리면, 그러면 그때부터 그 재물 때문에 잘못된 행동들이 나오게 되어 있는 겁니다.


그 재물을 획득하기 위해서, 내가 노동을 하고 정당한 노력을 해서 재물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재물을 우상으로 삼는 그 순간, 내가 정당하게 노력하고 노동을 해서 얻게 되는 방법이 아니라, 다른 편법을 통해서 그 재물을 획득하려고 하는 그런 잘못된 방법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하는 일들이 무엇이냐 하면 사기를 치는 겁니다. 약탈하고 착취하고 횡령하고 편취하고 절도하는 행위들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다 재물을 우상으로 섬기기 시작할 때, 그런 잘못된 행동들이 나오게 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재물들을 우상으로 섬기지 말라고 하는 의미에서 도둑질하지 말라고 하는 이 계명을 주셨다고 하는 것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우리가 기억할 것이 있다고 한다면, 돈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라고 하는 점입니다. 재물 물질 자체가 악한 것 악하고 더러워서 우리가 반드시 없애야 할 것은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먼저 기억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물론 성경에 보면 물질을 버려야 한다고 하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예수님을 찾아온 젊은 관원에게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해 주셨습니까?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주님께서 말씀해 주셨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그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가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물질을 다 버려야 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부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도 말씀해 주셨고,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을 따를 때,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고 성경에 기록해 놓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경에서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해 주셨고, 마태복음 6장 24절의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나오는 이런 말씀들을 우리가 생각해 보면, 재물이라고 하는 것은 나쁜 것이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은 재물을 갖다 버려야 하고, 무소유를 실천하면서 살거나 가난하게 살아야, 그 사람이 진짜 크리스천이라고 할 수 있지, 재물을 소유한다든지 부자로 산다면, 그 사람은 진짜 크리스천이 아니라고,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종종 우리가 성경 말씀을 그렇게 오해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돈 자체가 물질 자체가 악한 것이라고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것이 돈을 우상으로 만드는 것이 악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디모데전서 6장 10절 말씀에 보면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냐면,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 돈을 “사랑하는 것,” 다시 말하면 돈을 우상으로 삼는 것이 그것이 잘못이라고 가르쳐주는 것이죠. 거기서부터 악이 나오는 것이지, 돈 자체가 너무나도 나쁜 것이기 때문에, 버려야만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은 아니죠.


그래서 우리가 이 재물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이것을 취득할 때, 우리가 정당한 노력으로 수고와 땀을 흘린 다음에 얻게 되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정당한 소유이겠지만, 그것이 우상이 되어서,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한 방법을 동원해서까지 그것을 절취하게 되려고 한다고 하면, 그것은 악한 일이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절도하지 말라고 하느냐? 왜 남의 것을 부당하게 가져가는 것을 금하고 계시는가?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 첫 번째, 그렇게 해서 그 잃어버리게 된 사람들은 너무나도 큰 고통을 당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훔친 사람, 도둑질한 사람에게는 별로 소중하지 않은 것일 수가 있겠지만, 그러나 도둑질을 당한 사람에게는 정말 소중한 것이고 삶의 일부가 되는 것이 일 수가 있겠는데, 그것을 빼앗아가 버린다고 한다면, 그 잃어버린 사람에게 어마어마한 고통을 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것이죠.


우리가 이웃에 대해서 가져야 될 태도가 있다고 한다면,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베풀고, 그리고 참 좋게 대하는 것이, 우리 성도에 가져야 할 태도이지, 고통을 주는 것이 성도가 가질 태도가 아니기 때문에, 도둑질하지 말아야 할 겁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도둑질을 금하시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도둑질을 해서 얻게 된 그 물질은 결코 우리들에게 유익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도둑질에서 물건을 얻게 된다고 한다면, 그것이 우리들에게 잠시 잠깐의 쾌락과 기쁨을 줄 수가 있겠지만, 그러나 정말 우리들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빼앗아가 버립니다. 우선 감사가 없어져버려요. 감사 도둑질 해놓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고백이 나오겠어요. 그런 감사가 나올 수가 없어요. 인생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무엇이냐면, “감사”예요.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다고 한다면, 내가 그것처럼 행복하고, 그렇게 좋은 게 없어요. 내가 땀을 흘리고 수고하고 애써서 무엇인가를 얻게 되면, 그러면 감사가 저절로 나옵니까? 안 나옵니까? 감사가 나와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땀의 수고와 정말 엄청난 노력을 통해서 내가 무엇인가를 얻게 되었을 때, 그것이 너무나도 기쁘고 감사해서, 하나님 앞에 감사가 나올 수가 있겠는데, 도둑질해 가지고는 감사가 안 나오는 거예요. 우리들의 삶 가운데 삶에서 감사가 사라져 버리게 되는 결과가 되는 것이죠. 감사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인데, 쉽게 불법적으로 얻게 된 재화는 우리들의 감사를 빼앗아가 버리게 되는 것이고, 우리가 결국 남의 것을 훔치게 된다고 하면, 우리가 재물의 노예가 돼버리는 것이고,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기쁨이 사라져 버리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결국 우리들에게 전혀 유익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금하고 계시는 것이죠.


도둑질이 무엇인가? 도둑질이란 부당하게 소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모든 것들은 여러분들이 실생활 가운데서, 제가 여기서 일일이 사례를 다 들면서, “이것도 죄입니다. 이것도 도둑질입니다. 저것도 도둑질입니다”라고 예를 일일이 일일이 들지 않아도,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서 이것이 과연 도둑질인가 아닌가를 판단해 볼 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직장에서 일을 하는데, 성실하게 일하지 않는 것은 도둑질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정반대로 사람들을 쓰는 주인이 직원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우월적인 지위를 사용해서, 임금을 착취하거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아주 부당하게 대우한다든지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생들이나 외주화를 통해서 그래서 돈을 아끼려고 하는 방법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정당하게 주어야 될 것들을 주지 않는다고 하면, 그것은 도둑질이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물건을 맡겨주셨는데, 물질을 맡겨주셨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지 않는 것도 역시 도둑질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그냥 우리가 다 가지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맡겨주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위하여 또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라고 주신 것인데, 그 원래의 목적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그러면 도둑질이 될 수가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말라기 3장 8절에서부터 10절 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을 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그것도 도둑질이 된다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내가 벌 때도, 역시 남겨두면서, 가난한 자와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남겨두고 벌어야 되는데, 싹쓸이하면 그것도 역시 도둑질이 될 겁니다. 레위기 19장 9절에서부터 10절 말씀에 보면 “너희가 너희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 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농사를 짓는데, 농사를 짓는데, 땅에 떨어진 포도 열매 이삭들을 주어 오는 것은, 그것은 내 것이 아닌 것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성경이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즉 그러니까 우리가 돈을 벌 때에도, 내가 최대한의 이익을 남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익을 골고루 나눠 가질 수 있도록, 아예 돈을 버는 그 과정에서부터 우리가 신실하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너무나도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 제8계명 도둑질하지 말라고 하는 이 계명을 어길 때가 너무나도 많을 겁니다. 왜냐하면 이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우리에게 쉽게 우상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물질을 우상으로 삼지 않겠다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물질을 보면 견물생심이라고 물질이 되면 어느 순간에 내 마음속에 물질이 나의 우상이 되어버려서, 그 물질을 갈망하고 그 물질을 부당한 방법으로라도 내가 얻으려고 하는 그런 경향이 불쑥불쑥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게 우리들의 모습이에요.

절대 반지(반지의 제왕)라고 하는 영화를 보셨습니까? 절대반지에 보면, 이 절대반지라고 하는 그 반지가 있으면, 사람들이 갑자기 그 반지를 보는 순간에 정신이 회까닥 돌아요. 그래가지고 그 반지를 손에 쥐기 위해서, 그 반지를 내가 얻게 된다고 한다면, 모든 것을 다 다스릴 수 있겠다고 하는 그런 생각 때문에 절대 반지를 얻기 위해서, 온갖 투쟁을 해서, 그 반지를 쟁취하는 모습이 영화에 그려지고 있는데요. 물질이라고 하는 것이 마치 절대반지와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평상시에 괜찮은 것처럼 정말 성자처럼 보이고 거룩한 사람처럼 보이고 정말 믿음이 좋은 사람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에 절대반지와 같은 그 돈이 돈을 내가 도둑질할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주어지면 눈이 회바닥 돌아가서 금세 도둑질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바뀌어 버리는 게 우리 모두의 모습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참 모든 사람들이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게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서 대책도 필요하고, 여러 가지 방책을 구해야 하는 것이고요. 재정 관리를 할 때 한두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3명 이상 여러 사람들이 함께 서로 견제하면서 그래서 관리하도록 만들어야 되는 것이고, 정말 사람들은 악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것을 훔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훔치는 데까지 나아가는 게 우리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그 재물들을 함부로 가져갔던 그런 사악한 모습처럼, 우리 인생들은 너무나도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에 너무나도 쉽게 넘어질 수 있는 죄악이 바로 이 죄악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늘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피 흘려주셨습니다. 그 보혈의 피를 흘리신 주님 앞에 오늘도 다시 나가서, 우리의 지은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고 또다시 결단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하는 그런 다짐을 하면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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