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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 사랑 강해 07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이 표현은 “자기의 것”을 구하지 않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이 표현은 다음의 몇 가지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개역개정 성경의 번역대로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참된 사랑은 무엇인가?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 내적인 동기가 되어서 나오는 사랑의 행위는 참된 사랑이라 할 수 없다. 우리는 처음 사랑할 때에는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사랑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들의 마음에 자연스럽게 보상심리가 작용하기 시작한다. 내가 이만큼 사랑했으면 내게도 똑같은 사랑으로 보답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떠오르게 된다. 그런데 성경은 자신의 유익이 목적이 되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라 할 수 없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은 우리가 사랑을 베풀고 자비를 베풀 때 갖게 되는 자연스러운 기쁨마저도 죄악시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가 사랑을 행하면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기쁨이 솟아오르게 되어 있다. 반대로 내가 희생적인 사랑을 행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행동할수록 우리들의 마음은 메말라가게 되어 있다. 우리의 마음이 광야로 변해가는 이유는 내 주변에 나를 사랑해줄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그만큼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을 행할 때 우리는 마음이 풍성해지게 되어 있고 기쁨이 넘치게 되어 있다. 이러한 기쁨마저도 잘못된 것이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둘째, 이 말씀은 타인의 유익을 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한다. 그래서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을 위해서 희생해가면서 산다. 참된 사랑은 내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는 것이다.

셋째, 이 말씀은 나의 방식(방법)을 주장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은 내 방식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한국 크리스천들이 잘 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내 방식과 내 계획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사마리아인이 강도만난 자를 도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갑자기 자신에게 맡겨주시는 사명에 자신의 원래 계획을 포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원래의 계획과 목표를 끝까지 밀고 나가려면 우리는 사랑을 실천할 수 없다.

왜 우리는 내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사랑, 더 나아가 나의 것을 주장하지 않는 사랑을 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먼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그러한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저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셨다. 그러한 사랑을 받은 우리도 참된 사랑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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