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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쓴 편지(고후 2:1-4)

만일 교회 안에서 죄를 범하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면 흔히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난다. 우선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용서하고 덮어두어야 한다는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든지 실수하고 잘못을 하게 되어 있는데 누가 누구를 정죄할 수 있겠는가 하면서 덮어두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반면 교회는 거룩한 공동체이기 때문에 교회의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런 죄를 저지르는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 옛날 고린도 교회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었다. 그 교회 안에는 음행, 탐욕, 우상숭배, 모욕, 술 취함, 속여 빼앗음, 분열과 성찬 때의 무질서와 같은 잘못들이 있었다. 성도들이 이러한 잘못들을 행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온정주의에 빠져서 성도들이 죄악을 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른척 해서도 안 될 것이지만, 정 반대로 바리새주의에 빠져서 죄를 짓는 성도들을 그저 비난하고 정죄하는 일만 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부모의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 사랑하는 자녀가 잘못된 길로 간다면 부모는 어떻게 하는가? 부모는 지나가는 나그네처럼 모른 척 하지도 않고, 정 반대로 아무 상관이 없는 경찰이나 재판관처럼 비난이나 정죄만 해버리고 끝내지도 않는다. 부모에게는 자녀의 회복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 문제가 있었을 때,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방치해두지도 않았다. 반대로 그는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그저 비난만 해버리지도 않았다. 바울 사도의 목적은 그들을 온전히 변화시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이끄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눈물로 쓴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 학자들이 이 편지가 고린도전서와 후서 사이에 보내진 현재는 유실된 편지일 것이라고 추측하곤 한다. 따라서 그 내용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이 편지를 통해서 바울 사도는 문제를 바로잡고 성도들을 회개시키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는 고린도 교회에 방문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하였다. 섣불리 방문했다가 오히려 역효과를 낼 것 같아서 그랬을 것이다.

우리는 두 가지 극단적인 태도를 수정해야 한다. 악을 보고도 방관하는 구경꾼의 태도와 악을 범하는 사람들을 보면 비난만 해버리는 바리새파의 태도를 버려야 한다. 대신에 우리는 부모의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

사실 하나님은 구경꾼처럼 우리를 대하지 않으셨고, 바리새인처럼 우리를 대하지도 않으셨다. 우리가 죄로 인하여 영원히 멸망을 당하게 되었을 때, 거참 안 되었네 하면서 혀를 끌끌 차고만 계시지도 않았고, 바리새파 사람들처럼 우리들의 죄악을 비난하면서 정죄하고만 계시지도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로 뛰어드셨다. 그리고 그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내어주시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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