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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의 믿음(히 11:11-12) – 믿음의 사람들 06

성경은 사라가 나이가 많아 아이를 가질 수 없었으나 믿음으로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한다(히 11:11). 이러한 표현을 읽을 때 우리의 마음에 몇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정말 믿음이 있다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가능하게 될 것인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왜 우리들에게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에 대하여 사람들은 대체로 두 가지를 지적한다. 의심했기 때문이고(약 1:6-7) 또는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했기 때문(약 4:2-3)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기도가 이 두 가지에 걸리지 않기란 참으로 어렵다. 늘 불안하고 의심스러운 생각이 드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고, 우리의 필요와 우리의 욕심이 완전히 배제된 기도제목이라는 것은 거의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사라의 경우를 보면 우리와는 다른 대단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사라는 자신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잘 믿지 못했다. 그래서 하갈이라는 몸종을 아브라함에게 첩으로 주기도 했고, 천사들이 와서 내년에 아기를 낳게 될 것이라고 했을 때 웃기까지 했다. 어쩌면 사라도 우리들처럼 연약한 믿음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그런데 히브리서 11:11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라의 믿음이라는 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라는 자신이 아들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믿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라의 믿음은 하나님이 신뢰할만한 분이라는 사실을 믿었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하나님이 믿을만한 분이며 신뢰할만한 분이라고 믿는 것과 나에게 아들이 생길 것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 큰 차이가 없어보이지만 아주 중요한 차이가 있다.

꼬마는 아무리 아빠의 손을 붙잡고 있어도 캄캄하고 무서운 곳을 지날 때 무서울 수밖에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하기는 하지만,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를 살려주실지 불안해서 수술대 앞에서 벌벌 떨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대한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일이 어떻게 될지 몰라 두려운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라는 하나님을 신뢰하기는 했지만 자신에게 아기가 생길 것이라고는 기대할 수 없었다. 그게 자연 이치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는 하나님을 신뢰했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경험을 한 것이다.

우리가 믿어야 할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우리를 결코 외면하거나 잊으시는 하나님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에 조그마한 의심이 생긴다고 해서 너는 아웃이야 라고 말하며 탈락을 선언하는 분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목숨을 내놓으시는 분이시다.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빚을 져가면서 증중외상센터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국종 교수가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셨다. 사라는 인생의 경험에서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임을 믿었다. 그분께서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정말 믿기 어려웠다. 그래서 웃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일을 이루어나가시는 것을 보면서, 정말 신실하신 하나님임을 체험했을 것이다. 믿음으로 사라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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