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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기를 쉬는 죄(삼상 12:19-25)

하나님께서는 우레와 비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의 죄를 책망하셨다. 온 세상이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으니까 천재지변을 통해서 하나님은 경고하실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재난들에 하나님의 경고가 새겨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에게도 하나님은 아무런 경고를 보내지 않을 수도 있고, 비교적 선하고 좋은 사람도 어려운 일을 당할 수 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 고난을 당하는 모습을 볼 때, 함부로 하나님의 경고이니 어저니 하면서 말을 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며 더 나아가 악한 일이다. 욥의 세 친구들은 어줍지 않는 교훈들을 욥에게 늘어놓았다가 하나님의 책망을 받기도 하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욥 42장).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는 그들과 함께 울어야 한다(롬 12:15). 반면 나에게 고난이 닥친다면 혹시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것이 있는지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 문제는 사람들이 거꾸로 한다는 점이다. 자신에게 고난이 닥쳐도 회개가 없고, 다른 사람이 고난을 당할 때면 훈계하기를 좋아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때 아닌 우레와 비를 보면서 사무엘에게 부탁했다. 당신의 하나님께 기도하여달라고 말이다. 왜 자신들이 직접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사무엘에게 기도의 부탁을 했을까? 그것은 자신들의 더러운 죄악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 함부로 나아갔다가는 멸망당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구약의 한계였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놓여 있던 죄의 담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구약만 읽어서는 안 되고 신약의 빛 아래서 성경을 읽어야 한다.

이제는 누구든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다. 어떤 기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들의 힘을 빌릴 필요가 없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는 말씀(약 5:16)은 우리 중에 좀더 의로운 사람들에게 기도를 부탁해야 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우리가 회개하며 기도해야 함을 의미한다. 에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함을 받으며 기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무엘은 이런 부탁을 받았을 때, 기도하겠다고 대답하기 전에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서 권고하였다. 하나님만을 섬기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를 것을 권고하였다. 그 이유는 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도를 많이 하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이다. 그래서 사무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권고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무엘은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그냥 기도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다. 그것은 죄이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죄일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일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도움이신데 그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겠다고 하였다. 사실 이스라엘 민족은 왕을 구할 때 사무엘도 버렸는데, 사무엘은 자신을 버린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참 감동적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그런 분이 계시다.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지금도 기도하고 계신다(롬 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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