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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포도주 새 포도주(눅 5:36-39)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귀로 듣고 예수님께서 하시는 기적을 직접 자신의 눈으로 목격한 사람들은 얼마나 복된 사람들인가? 우리들은 성경을 읽으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한 채 신앙생활을 하는데,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면서 예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을 수 있었던 사람은 그야말로 영적인 특권을 누린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님을 거부하고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눅 7:34)라고 하면서 비난하였다. 이들은 예수님의 주옥같은 말씀을 직접 들었고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을 직접 체험했으면서도 왜 이러한 반응을 보였을까?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굳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신앙생활 해오던 관습들이 하나의 표준이 되어버렸고 주님을 자신의 기준에 따라 판단해버린 것이었다.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위험성이 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신앙생활의 법칙들을 세워나가는데, 그러다보면 어느새 우리가 세운 신앙생활의 법칙들이 최고의 기준이 되어서 성경 말씀 앞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으로 성경을 재단할 때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하게 서야 할 필요가 있다. “개혁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est secundum verbum dei)는 말이 있다. 과연 지금 나의 신앙생활이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하는 것인지 살펴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느새 우리의 생각이 굳어져서 하나님의 은혜의 새포도주를 담지 못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제사였다. 하나님은 죄를 짓는 우리 인류에게 제사라는 제도를 주셨다. 이것은 죄인을 위한 은혜의 방편이었다. 죄를 지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회개의 희생제사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악한 인간은 이 은혜의 제사를 율법으로 바꾸어버리고 말았다. 그저 제사만 드리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제사를 드리고 다시 뻔뻔하게 죄를 지으면서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가인을 죽이지 않도록 보호해주시겠다고 은혜의 약속을 해주셨으나, 그러한 사실을 악용하여 죄를 지어도 회개가 없이 뻔뻔해졌던 라멕과 같은 태도와 같다(창 7:23-24).

우리의 마음이 낡은 가죽부대와 같이 되어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담아둘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낡은 가죽부대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등장하는 길가, 돌밭, 가시떨기와 같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졌으나, 열매를 맺을 수 없었던 그 밭들처럼 낡은 가죽부대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 어떤 훌륭한 메시지가 전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담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딱딱하게 굳어진 낡은 가죽부대와 같아서는 안 된다. 내가 기준이 되어,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안에서 자리 잡을 수 없다. 우리는 새 가죽부대처럼 부드러워서 하나님의 말씀을 쏟아내지 않고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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