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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을 제대로 치워야(마 12:43-45)

빈 컵에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속에 공기가 들어 있다. 그 컵을 거꾸로 들고 흔들면 컵 속에서 공기를 다 따라낼 수 있는가? 없다. 여전히 그 컵 속에는 공기가 들어 있게 된다. 그런데 그 컵에서 공기를 없애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그 컵에 물을 가득 붓는 것이다. 그러면 그 컵에서 공기는 사라져버릴 것이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일곱 귀신의 비유가 있다. 어떤 귀신이 집에서 나갔다가 쉴 곳을 찾지 못해서 다시 자신이 나갔던 그 집으로 돌아왔더니 청소가 되어 있고 아무도 있지 않아서 그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는 비유이다. 그런데 혼자 들어간 것이 아니라 다른 귀신 일곱을 더 데리고 들어갔다는 것이 예수님의 비유이다.

이 비유는 우리의 마음을 나타내는 비유이다. 우리의 마음에는 우상이 자리 잡고 있다. 그걸 귀신이라고 불러도 좋고, 또는 갈망이라고 불러도 좋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하면 그 갈망을 없앨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비움의 수련을 통해서 없애버리려고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 갈망을 충족시켜서 더 이상의 갈망이 없게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갈망은 없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그 갈망을 없앴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갈망이 우리들의 마음을 장악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마치 나중에 일곱 귀신이 들어간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귀신을 쫓아내는 방법으로 비움의 방법이나 채움의 방법이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의 욕망, 또는 우상들은 너무나도 끈질겨서 우리가 결코 없애기 어렵다. 그런데 이러한 우상을 없애버리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참되신 하나님으로 채우는 것이다. 빈 컵에 물을 채우면 비로소 공기가 사라지듯이, 우리들의 마음에 참 되신 하나님을 영접해야 우리의 마음에서 비로소 우상이 사라지고 귀신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수가성의 여인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는 남편을 다섯씩이나 두었던 여자였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의 마음에 채움을 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남자도 그의 마음에 만족함을 줄 수 없었다. 오히려 더 고통스러웠다. 그는 다른 사람의 눈이 무서워 혼자 뙤약볕이 내리쬐는 대낮에 물을 길러 온 것이다. 그런데 그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자 그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우리의 갈망을 충족시켜서 그 갈망을 없애버리는 방법으로나, 또는 수련을 통해서 그 욕망을 내려놓는 방법으로 결코 우리의 갈망을 없앨 수 없다. 오로지 참되신 하나님을 마음속에 받아들일 때에야 비로소 갈망이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참되신 하나님을 추구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을 추구하고, 박수 받는 것을 추구할 것이 아니다. 그러한 것들은 우리를 결코 충족시켜 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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