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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단의 믿음(삼상 13:16-14:15)

이스라엘과 블레셋과의 전쟁은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블레셋의 전투력은 막강했으나 이에 비하여 이스라엘의 전투력은 미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요나단은 이러한 사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담대하게 블레셋과 싸우러 나갔다. 전쟁의 승패는 사람의 수에 달린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요나단은 그 전쟁에서 이겼다. 단 두 사람이 놀라가서 무찔렀는데 블레셋은 그 앞에서 패하고 말았다.

믿음은 무엇인가? 요나단처럼 무대뽀로 밀고 나가는 것이 믿음일까? 하지만 예수님은 전쟁을 하기에 앞서 이길 수 있는지 먼저 따져보라고 하셨다(눅 14:31-32). 무조건 밀어붙이는 것이 능사가 아닌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를 주셨다. 그래서 이성을 사용하는 것은 불신앙적이고 잘못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건전한 것이다.

하지만 신앙인과 불신자 사이의 차이점이 있다면, 하나님을 계산에 넣는 것이다. 요나단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확신했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 전쟁을 하러 간 것이다. 문제는 과연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실 것인가 하는 점이다. 엘리 제사장 시대에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전투에 나갔다. 언약궤를 가지고 나갔다. 하지만 전쟁에서 지고 말았다. 그들의 믿음과 희망과는 달리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었다. 사실 하나님의 응답에는 어떤 법칙이 있지 않다. 우리 편에서 아무리 믿음으로 간구하고, 정욕으로 구하지 않고, 죄를 다 회개하고, 쉽게 포기하지 않고 기도한다고 해도 기도의 응답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기도의 응답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요나단의 경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살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실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될 때, 전쟁에 나갔던 것이다. 문제는 오늘날에는 요나단이 사용했던 방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미 성경이 완성된 오늘날에는 그런 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점치듯이 발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성경을 묵상하면서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가 발견하려고 해야 한다. 비록 하나님이 구체적인 대답에 대해서 침묵하시는 것 같지만,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간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요나단은 적진으로 달려갔다. 무모한 것 같았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될 때, 적진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 내었다. 예수님이 하신 일도 바로 그와 같았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발견했다. 그래서 십자가를 향해서 나아가셨다. 그래서 우리를 적군의 포로의 상태에서 구해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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