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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한 명령(삼상 14:24-30)

사울 왕은 블레셋 민족이 자중지란에 빠진 모습을 보고 특별한 명령을 내렸다. 그것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말라는 명령이었다. 도대체 사울 왕은 왜 이런 명령을 내렸을까? 성경은 구체적으로 그 이유를 밝히고 있지 않다. 아마도 금식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을까? 만일 그렇다면 사울은 하나님에 대하여 신앙에 대하여 금식에 대하여 아주 크게 오해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은 배고픔 때문에 전쟁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더 나아가 전쟁이 끝난 후 고기를 먹을 때 너무 배고픈 나머지 피와 함께 고기를 먹는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다. 이 모든 잘못된 결과의 원인은 사울 왕이 내린 잘못된 명령에 있었다.

우리는 종종 신앙이면 다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교, 예배, 전도, 금식, 기도, 헌신, 봉사, 구제 등등 신앙적인 일은 무조건 옳은 것이고 당연한 것이며 많이하면 할수록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예수님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셨다. 이방인들처럼 기도를 많이 하기만 하면 좋은 것이 아니라고 답변하셨다(마 6:7-8). 더 나아가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고 성경은 가르친다(전 3:1-8). 전쟁의 시점에서는 금식이 정답이 아니다(삼상 14:29-30).

안타깝게도 교회 안에는 사울 왕과 같은 사람과 요나단 같은 사람이 있는데, 언제나 사울 왕처럼 말하는 사람이 승리한다. 예배는 무조건 많이 드리면 좋은 것이고, 선교는 무조건 많이 하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는 예배를 드려야 하지만 예배만 드리는 것은 옳지 않다. 기도를 해야 하겠지만, 기도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다 때와 시기가 있는 법이다. 우리는 먹을 것을 얻기 위해서 기도만 하고 있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니라, 땀을 흘리며 일을 해야 한다.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하셨음을 기억해야 한다(살후 3:10).

그런데 안타깝게도 신앙은 종종 율법이 되어버리고, 무조건 많이 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그래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향해서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처럼 될 때가 많다. 이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신앙은 무엇보다도 기쁨에서 우러러 나와야 하는 것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울의 명령으로 인해 그 누구도 기쁨으로 금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억지로 할 수 없이 율법이 되어버린 금식을 한 것이다. 이것이 아쉽다. 우리는 누가 뭐라고 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 아들을 주신 하나님이 너무나도 감사하기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스라엘 민족은 왕을 세워달라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비극적인 체험을 하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굶어야 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 대신에 이 세상의 것을 우상으로 세울 때 필연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결과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의 그 어느 것에도 소망을 두어서는 안 되고 참되신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아야 한다(히 12:2). 예수님은 우리를 굶기신 것이 아니라 먹이셨다.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 먹이기도 12 광주리를 남겼다. 그리고 자신의 몸으로 우리를 영적으로 먹이시고 살리셨다. 우리가 예수님만을 바라보아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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