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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막 2:13-17)

아무런 회개도 없이 계속해서 죄를 저지르면서 뻔뻔하게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복음이 아니라, 복음을 악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복음을 악용하는 것의 원조는 라멕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이 살인죄를 저질렀지만, 그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함부로 가인을 죽이지 못하게 만드셨고 가인을 죽인다면 벌이 7배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신 적이 있었다. 이것을 본 라멕은 뻔뻔하게 이렇게 말했다.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창 4:23-24) 라멕은 하나님의 은혜를 악용하면서 뻔뻔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라멕과 같은 사람들이 많다. 대표적인 이단집단 가운데 구원파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아무것도 이제는 필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거룩하게 살 필요도 더 나아가 회개할 필요도 없다는 극단적인 결론에 이르게 만드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바른 복음이 아니다. 사실 우리 한국교회 성도들은 이런 구원파적 경향을 많이 띄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따라서 이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향해서 진정한 회개가 없는 용서라고 비난하는 것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세리를 불러주셨다. 이 모습을 볼 때 당시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은 비난하기 시작했다. 어찌하여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실 수 있는가? 하지만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대답하셨다. 만일 예수님께서 건강한 사람들을 부르러 오셨다면, 그 누구도 주님 앞에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거룩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이고, 영적으로 병든 자들이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죄를 바라보지 못했다. 세리를 바라보면서 그들은 괜찮은 사람들인 줄 생각했다. 자신들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들은 의사이신 주님 앞에 갈 수 없었다. 하나님을 바라본다면 자신들의 죄를 발견할 수 있었겠지만, 그들의 눈은 자신들보다 더러워 보이는 세리들만을 바라보았고 그래서 괜찮을 줄 알았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영적으로 구제불능임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주님께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시려 안달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회복시키기를 원하시는 분이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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