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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단에 대한 처벌(삼상 14:45-46)

사울 왕은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죄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과연 그 죄가 누구에게 있는가를 색출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사울 왕의 태도는 바른 태도가 아니다. 만일 문제가 있다면 누구에게 그 책임이 있는가를 따지기보다 내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런데 사울 왕은 자신의 문제를 바라보기 전에 다른 사람에게 그 책임을 돌리려 했다.

그래서 사용한 것이 제비뽑기였다. 예전에 제비뽑기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를 선택하기도 했었고(사울 왕의 경우), 제비뽑기를 통해서 죄인이 누구인가를 찾아낼 수도 있었다(아간의 경우). 그러니까 제비뽑기는 범인을 색출하는 가장 좋은 방법처럼 생각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비를 뽑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바로 그 사람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제비뽑기에 메여있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언약궤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적이 있다. 언약궤를 들고 갈 때 요단강이 갈라지기도 했고, 언약궤를 들고 행진할 때 여리고 성이 무너지기도 했다. 하지만 언약궤 자체가 능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람의 뜻에 따라 언약궤를 가지고 가지만 하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결국 언약궤는 블레셋 민족에게 빼앗기고 말았던 것이 아닌가?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제비뽑기를 통해서 역사하신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제비뽑기를 하기만 하면 무조건 다 범인을 찾아낼 수 있고, 제비뽑기를 하면 가장 좋은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아니나 다를까 제비뽑기를 통해서 요나단이 뽑혔다. 요나단은 범인이 아니다. 그는 금식의 맹세를 할 때 그 현장에 있지도 않았고 맹세에 동참하지도 않았었다. 뿐만 아니라 요나단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공로를 세운 사람이었다. 더 나아가 나중에 사울 왕이 요나단을 죽이지 않았지만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징계하지도 않으셨다. 요나단이 죄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요나단이 제비뽑기에 뽑힌 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관계없이 이루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발생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가 범인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는 것에 대한 책임은 사울 왕에게 있었다. 그는 금식을 명령했는데, 그것은 신앙적인 동기에서 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을 이용해서 전쟁에서 승리하고자 했던 잘못된 동기가 숨어 있었다. 마치 스스로 번제를 드렸던 잘못과 비슷한 잘못이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는 것에 대한 책임은 백성들에게 있었다. 그들은 배고픈 상태에서 피째 고기를 먹었던 것이다. 하지만 요나단은 죄가 없었다. 하지만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할 위기에 몰린 것이다. 그리고 그 희생양 앞에서 모두가 피해 숨어가는 모양새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는 모습과 똑같다. 우리는 우리 가정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리고 교회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리고 우리가 속한 단체에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 책임을 져야 할 희생양을 찾는다. 그리고 그 희생양 뒤로 우리는 숨는다. 남편을 탓하고, 아내를 탓하고, 자식들을 탓한다. 그런데 탓해야 할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그래서 나 자신의 가슴을 쳐야 옳다.

요나단을 죽이려고 하는 순간 백성들이 그를 살려냈다. 백성들이 간청해서 살려냈다. 사울 왕이 어떻게 자신의 아집을 꺾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 살아났다. 사울 왕의 잘못된 판단에 의해 희생을 당하지 않았다. 이걸 생각해보면 입다의 딸의 경우에도 구군가 나서서 말렸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소견에 좋은 대로 행하다가 결국 딸을 죽이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이 위기에 있을 때, 우리를 위해 변호하고 구원해 줄 분이 계신다.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시다(요일 2:1-2). 요나단은 억울하게 죽을 뻔 한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우리를 살리셨다. 그것도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주어 살리신 것이다. 우리를 살리신 주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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