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닫기

기도와 황금율(마 7:7-12)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 아버지이시다. 부모는 자녀가 먹을 것을 달라 하면 먹을 것을 준다. 먹지 못할 것을 주는 경우는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는 영적인 아버지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구하여야 한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나무나 바위처럼 우리의 기도를 듣지 못하는 대상을 향해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기꺼이 들으실 뿐만 아니라,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기 원하시는 사랑이 많으신 주님 앞에서 기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기도에 하나님의 응답이 없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 이유는 하나님이 듣지 않으시기 때문도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도 아니고, 우리의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도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우리가 구하는 것이 우리에게 영적으로 유익하지 않기 때문일 가능성이 많다. 아무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해주시기 원하는 분이시다.

그런데 이 말씀 뒤에 황금률이라고 하는 말씀이 배치되어 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대접을 잘 해주어야, 그때에서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을 말씀하시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니, 그런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적인 아버지처럼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 그러기에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황금률이 등장한다.

이게 성경의 일반적인 구조이다. 주기도문 뒤에는 용서하라는 권면이 등장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는데 그런 사랑을 받았다면 우리도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로마서도 마찬가지이다. 1-11장에서는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가르친다. 그러면서 12장부터는 그런 은혜를 받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친다. 갈라디아서도 마찬가지이다. 1-4장은 우리가 행위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가르친 후에, 5장부터는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룬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비를 베풀며 살기를 원하신다. 그게 번제를 드리는 것보다 더 원하시는 것이라고 하신다(호 6:6). 물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의미 없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자비롭게 살 것을 강조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한국 성도들은 구원파처럼 생각할 때가 많다. 즉 나의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니까, 아무렇게나 살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많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것이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다면, 우리는 아무렇게나 살 수 없다. 사랑을 베풀며 사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깨달은 자이다.

Loading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