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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가 너를 위하여(삼하 7:1-17)

다윗은 성전을 짓고 싶어 했다. 이러한 다윗의 관심은 놀라운 것이었다. 사울 왕의 경우, 왕으로 있는 동안에 오로지 다윗을 죽이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는데,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를 가져오길 원했고, 더 나아가 그 법궤가 있는 처소가 누추하다는 것에 마음이 쓰였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의 소원을 들었을 때, 그렇게 하라고 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막으셨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언제 내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다고 따진 적이 있느냐?”고 물으셨다. 그런데 학개 선지자는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서 강하게 책망했다. “너희가 좋은 집에 살면서, 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나단 선지자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성전을 왜 건축하려 드느냐?”라는 것인 반면, 학개 선지자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왜 성전을 건축하지 않느냐?”였던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 장단을 맞추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그렇게 말씀하셨고, 왜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아무렇게나 하나님의 말씀을 내 상황에 가져다 쓴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악용하거나 최소한 오용하는 일이 될 것이다.

다윗에게 성전을 건축하지 말라고 하시는 이유는 자신이 누구인가를 돌아보라는 의미이다. 다윗은 왕으로서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하겠다고 하면서 성전을 지으려고 했다. 왕인데, “이까짓 것 못하겠느냐?”는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다윗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직접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어주시겠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인가 은혜를 베풀어주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앞에 엎드려야 할 존재임을 재확인시켜주신 것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들은 다윗과 같은 생각에 종종 빠진다. 내가 주를 위해 봉사하면서 내가 무엇인가를 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찰 때가 많다. 그래서 그런 일들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의를 자랑하길 원했고, 예수님께 찾아온 젊은 청년도 어려서부터 모든 율법을 다 지켰다는 것을 들고 나왔고, 탕자의 형은 아버지의 명을 어김이 없었다는 사실을 들고 나왔고, 포도원에 들어온 농부들은 아침부터 지녁까지 종일토록 수고한 것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한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은혜를 갈구하는 것이 바른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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