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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몸을 온전하게(엡 4:11-12)

성경적인 관점으로 볼 때,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성도들의 모임이다. 만일 교회가 건물이 아니라, 성도의 공동체라면 교회가 멋진 건물을 소유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변화일 것이다. 물론 세상은 얼마나 멋진 건물을 가졌는가 같은 것으로 교회를 평가하겠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화되고 온전하게 회복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성도가 바른 신앙적 관점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흔히 빠지게 되는 신앙적 관점이 있다면, 율법주의적 신앙관점이다. 율법주의적 신앙관점은 기독교의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성경과는 거리가 먼 신앙관점이다. 율법주의적 신앙관점은 예수님께서 책망하셨던 바리새파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관점이고, 바울 사도가 싸워야 했던 유대 율법주의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관점이었다. 율법주의적 신앙관점은 신앙을 단순히 몇 가지 신앙의 법칙을 지키고 준수하는 것으로 축소시킨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단순히 하나님께서 원하실 것이라고 생각되는 계명들을 지키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을 사랑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우리들의 삶에 필요한 것을 얻게 위해 신앙을 이용하게 만든다.

율법주의적 신앙관점의 근저에는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하여 현재의 유익을 얻으려는 마음이 깔려있다. 결과적으로 율법주의적 신앙관점을 가지고 있으면 신앙적으로 교만하게 되어 있고,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는 정죄하는 태도를 가지게 되어 있다. 더 나아가 목회자에 대해서는 합당한 존경의 마음을 갖는 것이 아니라, 과도한 방식으로 우러러보며 심지어 의존적인 현상까지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결국 목회자에게서 드러나는 여러 가지 단점들을 직면하게 될 텐데, 그러할 경우에는 역시 과도하게 정죄하는 태도를 보이거나 때론 신앙을 잃어버리기까지 한다. 무엇보다도 율법주의적 신앙관점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죄인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어떻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성도들을 온전하게 만들고 영적으로 회복시키고 변화하게 만들 수 있는가? 에베소서 4:11-12의 말씀에 의하면,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교회 안에 여러 가지 직분자들을 세우셨다고 한다. 신앙생활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연약한 성도들을 도우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마치 부모가 자녀를 기르면서 자녀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도 더욱 성숙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사명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하인스라는 볼보이 소년이 재빠르게 공을 선수에게 전달해줌으로 지고 있던 경기의 방향을 틀었던 트트넘과 올림피아코스 간의 경기처럼, 교회의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역이 결코 작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죽음에서부터 건져 주셨다. 이제 그 사랑을 서로 나누며 온전한 회복과 변화를 위해 서로가 함께 협력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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