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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알 제단을 파괴한 기드온(삿 6:25-32)

기드온 사사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바알 제단을 파괴했다. 우리도 우리 주변에 있는 우상들을 파괴하는 것이 옳을까? 그렇지 않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에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고 그들을 바른길로 인도하려는 열정을 가지는 것은 옳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우상을 함부로 파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사유재산을 침해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어느 한 부분의 정당성을 확보하기만 하면, 그 어떠한 방법을 사용해도 좋다는 착각에 빠지곤한다. 예를 들어, 우리 자녀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려는 선한 목적만 가지고 있으면 화를 내고 괜찮고 폭력을 써도 괜찮고 심지어 인격을 무시해도 괜찮다고 착각한다. 그렇지 않다. 목적만 좋으면 괜찮은 것이 아니라,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도 옳아야 한다.

물론 기드온은 우상을 부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통치 하에 있는 신정국가였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부터 해방된 후,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다. 그래서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약속했다. 그들이 지켜야 하는 법은 십계명을 비롯한 모세의 율법에 기록되어 있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신정국가 하에서, 우상을 파괴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신정국가 시스템 속에 있지 않다. 따라서 구약의 시민법을 우리들의 상황에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구약의 율법은 흔히 도덕법, 의식법, 시민법으로 3구분한다. 이 가운데서 도덕법은 지금도 지켜야 할 만고불변의 법칙이다. 의식법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성취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우리들에게 적용되지 않고, 시민법은 우리가 더 이상 신정국가 이스라엘이 아니기 때문에 적용되지 않는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도덕법이지만 부모를 저주하거나 때리는 자녀는 죽이라는 명령(출 21:15, 17)은 시민법적 명령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법은 신정국가였던 이스라엘에게만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바벨론에 끌려갔을 때, 우상에게 절하지는 않았지만 우상을 파괴하지는 않았다. 바벨론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신정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의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이 우상숭배를 하는 모습을 본다면,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그들을 바른 신앙의 길로 안내하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을 옳다. 하지만 그들의 우상을 부수어서는 안 된다. 남의 사유재산을 챔해할 권리가 우리에게 없기 때문이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폭력이 아니라 마음을 여는 방법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고, 우상숭배자들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께 달려있기 때문이다.

우상을 훼파한 기드온의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우상을 훼파하는 것으로 적용해야 한다. 우리는 여러 가지 우상을 마음에 두고 있다. 하나님이 아닌 것들 말이다. 이런 마음속의 우상들을 제거해야 한다. 기드온은 우상을 제거하려 할 때, 마을 사람들을 두려워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들에게 있는 우상을 제거하려 할 때, 두려운 마음이 들 것이다. 하지만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의 수공물일 뿐이다(시 115:4-7). 우리는 하나님만을 섬겨야 한다. 우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그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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