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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앙의 길(삿 3:7-11)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된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을 섬겼다. 그렇게 하나님을 잊어버린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은혜를 전혀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그들 가운데 옷니엘이라는 사람이 일어나 사사가 되었는데, 옷니엘은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이었다. 그러니까, 여호수아와 갈렙의 시대로부터 한 세대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가나안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던 사람들이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사람들은 너무나도 빨리 잊는다. 믿음의 길에서 불신앙의 길로 걸어가는 속도가 너무나도 빠르다. 한 사람이 영적으로 성숙하게 되는 데에는 정말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렇게 쌓아올린 믿음을 허무는 것은 순식간이다. 마치 건물을 짓는데에는 정말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뜨리는 것은 순식간에 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이스라엘 민족이 그렇게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된 것은 이방민족과 통혼하면서였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야 하며 불신앙의 길로 이끄는 사람들과는 피하여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 사람이다(시 1:1). 성경은 두루 다니면서 비난하고 험담하는 자들과는 사귀지 말라고 교훈하기도 한다(잠 20:19).

이스라엘 민족이 타락하게 되고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은 그들에게 싸움이 없어져버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초기 가나안 정착 과정에서는 그들이 하나님을 애타게 찾았다. 하나님의 은총이 없으면 안 되겠다는 절박한 심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전쟁은 그치고 편안하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을 잊은 것이다. 사실 다윗이 타락한 것도 도망자의 삶을 살 때가 아니었다. 그가 왕이 되고 한가로워졌을 때, 죄를 짓었던 것이다. 우리는 영적인 싸움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내부적으로 다투고 싸우는 일에 몰두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싸움의 대상이 하늘의 권세를 잡은 자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타락한 이스라엘을 치셨다. 구산 리사다임을 들어서 치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고통을 당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징계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주시는 것이었다(히 12:6). 고통 가운데 하나님을 찾을 수만 있다면, 고통은 우리에게 축복이 될 것이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부르짖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옷니엘을 일으켜주셨다. 그리고 그가 있는 동안 40년간 평안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영원한 평화는 아니었다. 그런데, 아는가? 우리에게는 영원한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오셨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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